채식주의자
한강 작가의 질문이 오래 남는 독서로 '채식주의자'의 책 읽기를 마쳤다.
내용을 모른 채 만나는 독서와 다르게 이미 너무 많이 회자된 유명 도서를 아무렇지도 않게 읽어 나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나만의 굳건한 독후감을 건져내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한강 작가는 글을 쓴다는 걸 소설을 엮는다는 걸 내면의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찾아나가는 작업이라고 말했던가?
그렇다면 작가 자신조차 고통의 연작이라고 규정지은 3부작의 글들을 엮어 나가며 던진 질문을 조심스럽게 들어보는 독자가 되어서 채식주의자를 만났다.
한 가지 질문을 풀어나가며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연유였을까?
중심축은 주인공 영혜이면서 시각은 3명의 타인들을 배치하여 3부작으로 엮어 나갔다.
남편과 형부와 언니의 시점이 모여져서 우리는 영혜를 만나게 되는 것 같았다.
1부는 영혜 남편의 시점인 채식주의자, 2부는 영혜 형부이자 인혜의 남편 시점으로 몽고반점, 3부는 영혜언니인 인혜의 시점인 나무 불꽃으로 내용을 펼쳐나간다.
책의 한편에 쓰여 있듯이 책을 읽어 나가며 편안함보다는 고통스러움을 체득하게 되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생생한 고통과 질문을 무책임하게 전가하지 않았으며 훨씬 더 많은 질문과 고통을 껴안고 있음을 느끼며 독서를 마쳤다.
한강 작가는 글을 쓰는 만큼 낭독에도 진심이 느껴지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며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이나 여러 가지 인터뷰들을 만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말투보다 질문형 낭독을 할 때 작가의 음성은 묵직하게 쐐기를 박는 느낌이라 너무 좋았다.
채식주의자를 읽어나가며 그리고 읽기를 마치고 나서 나는 많은 걸 내려놓고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현상적인 모습의 기이함도 내려놓고 도덕적인 규정도 버리고 정해진 관념도 한켜씩 벗겨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독자로서 한강작가에게 투항을 하며 내가 흘리는 피보다 더 처절했을 작가의 고통에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한강 작가의 신상에 자주 언급되는 어린 나이에 죽은 언니에 대한 궁금증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걸 궁금해하는 독자로서 조심스럽게 나만의 소심한 안식처로 독서후기를 상상해보기도 하였다.
'흰' 작품을 읽다 보면 특히 저릿해지는 자매의 숙명이 느껴졌던 단상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영혜와 인혜는 동일선상의 존재로 인간이 지닌 다양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었을까?
폭력에 저항하며 스러지는 자기 파괴적 연약한 영혜와 굳건하게 살피고 견뎌내며 희망으로 시선을 두는 인혜의 양면성이 보여서 괜스레 혼자 안도하는 독자 1인이었다.
한강작가의 나무 지향적인 시각을 여러 번 접하다 보니 기실 나무가 좋아 보인다.
물과 흙과 햇빛만으로도 자신의 세계와 성장을 도모해 내는 나무란 참으로 멋진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고통 속에 집필한 채식주의자 개정판을 2022년도에 내며 작가는 적지 않게 쏟아진 비판과 비난등에 힘들었지만 굳건하게 껴안을 힘을 얻었다는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인정으로 노벨문학상으로 충분히 힘의 충전이 되었으리라!
다시 한번 동시대의 사람으로 작가를 만날 수 있는 독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동스러울 뿐이다.
마음속에 굴리고 있다는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