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여성작가 작품 읽기
노벨문학상 수상 여성작가 작품 읽기 모임 시작 독서에 지각을 했다.
분주한 1월에 설 연휴도 포함이고 1주 정도의 여행으로 공백이 생기다 보니 책을 손에 쥐고 읽는데 늦어졌다.
모호한 느낌의 표지와 제목이 주는 느낌으로 책 읽기를 시작하였다.
소설 내용의 결이 버거운 듯 찰지게 읽혀서 좋았다.
얼핏 스치듯 본 글귀에 이 책을 만난 이유에 무언가 정서의 끝자락이 맞닿아 있는 이유일수도 있는 것일까?
그대로의 서사는 아니어도 무언가 어린 시절의 자락에 펄럭 같은 색채감이 번지는 듯 주인공이 친근해지는 느낌이었다.
나 칙칙하고 코르타르처럼 찔깃 거리는 정서를 좋아하는구나? 혼자 몰입하기도 했다.
1974년 발표한 데뷔작 빈옷장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온 아니 에르노 작가는 많은 문학상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지정된 아니 에르노 문학상을 2003년에 탄생시키고 드디어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니 소설가로서의 행보는 놀라운 성과를 이룬 것이다.
저자는 글쓰기란 세상을 향해 무언가 던지는 행위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형태를 만들어 존재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하였다.
특히 경험과 자전적 글쓰기를 표방하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있으니 작품 속 주인공을 자꾸 대입시키고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관음적 독자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역시 '빈옷장'을 읽어나가며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눈치채기 위해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책 곳곳에 작가가 던져두는 화두 속에서 나에게 강타를 하는 구절들을 주섬주섬 담아서 옮겨보게 된다.
애매한 완성형의 문장들과 랩같이 주절주절 쏟아내는 문체 속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추측해 본다.
그 더러운 자식은 잘 웃었다.
그 쓸모없는 부르주아.... 내 몸을 만진다.
시작되는 순간을 상상한다.
포탄, 장터의 공, 넘쳐흐르는 액체, p12
비밀 노트에는 책의 구절을 적는다.
내가 그 작가들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그들처럼 느끼고 본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부모님의 말이 외상으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훈계이자 너무 오래되어 딱지가 앉아버린 헛소리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p194
나는 어머니가 카페오레로 더럽힌 《즐거운 저녁들》과 카프카의 《성》사이에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또 깨닫는다.
내가 자라온 세계와 계속해서 거리를 둔다. 195p
물, 젤라틴 같은 조각으로 결론 지워질 것이다.
침, 땀, 8개월간의 섹스, 위아래로 토해내야 하는 모든 것을 다시 뱉어낸다.
나는 절대 다시는 그와 섹스하고 싶은 욕망을 갖지 못할 것이다. p215
구멍이 난, 능지처참을 당한 니니즈.
같은 곳이라면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수 없다.
쾌락, 그를 위한 작은 길, 그리고 꽥, 빗장을 풀고 구멍에 들어간다.
《잘 들어갈 거야, 안 들어가는 일은 없었어!》
주근깨가 뿌려진 손으로 고통, 고통스럽다. p226
인생에서 스무 살이 주는 알 깨기의 경계는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설정이었다.
작가는 그 분기점에 아주 쐐기를 박는 둔탁하고 정확한 펀치로 독자를 놀라게 했다.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간극이 느껴지는 삶의 이질성에서 한껏 힘을 모아 껑충 넘어가고 싶어 하는 드니즈 르쉬르가 절벽 사이에서 신음하는 곳이 훗날 계급 이동을 위한 대학의 기숙사 한편이라니 처절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그곳의 시련은 인간의 존엄과 여성의 미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자궁의 문제라니 절절하게 아픈 느낌이다.
빈옷장이 무얼까?
독서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었다.
옷장의 구실은 어찌 되었든 무에서 유를 창출하기 위한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닐까?
그런데 빈 옷장이라니 눈물겹다.
다만 빈 옷장이 수동적 비워짐이 아니고 능동적인 비워짐의 역동성을 보았다면 너무 작위적인 독자였을까?
능동적인 채움을 시작하고픈 바람을 위해서 작가 아니 에르노는 첫 작품부터 크게 한방 날리우고 문학 속으로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긴 것 같았다.
조만간 그녀의 다른 작품도 만나고 싶은 욕구가 불끈거리게 만드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