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여성작가 작품 읽기
폴란드 출신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엄선된 시집 '끝과 시작'을 읽었다. 시집이라고 하기에 짤막하고 간결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한 편 한 편 긴 내용의 시를 만났다.
예술가의 삶은 정치 사회적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는 상황 속에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작가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던 기록이 있었다. 예술활동을 정치 이념적인 테두리에서 이용하려는 권력층의 위해 속에 예술혼을 지켜내느라 고군분투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끝과 시작 시집은 작가가 1945년부터 2005년까지의 연도별 작품 중에서 엄선해서 엮은 시집이라니 알찬 구성력을 지닌 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적 선동에 반기를 들고 정치조직과의 절연도 감수하며 발간된 1957년의 ' 예티를 향한 부름'을 진정한 데뷔작으로 여겨질 만큼 작가는 정치적 참여를 의미 없는 행동으로 치부한 시인이었다
폴란드 출신답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점령과 유대인 대학살등 역사의 현장 속에 있으면서 시인의 본분을 잊지 않고 묵묵하게 고국을 지키며 작품활동을 지속해 낸 것은 대단한 저력이었다.
다작보다는 치밀한 시어의 탄생에 집중하며 써 내려간 시들은 길지만 함축적인 의미에 감동도 남고 관념적인 시어보다 실제적인 관조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작가의 일본 여행 중 생긴 단상인 듯 쓰인 시 한 편은 왠지 교토의 풍광에 감탄하고 좋아졌던 나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자꾸 들여다보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회오리 속에 폭격된 히로시마의 붕괴로 전쟁의 파괴성을 드러내는 시가 각인되었다. 이방인으로서 교토의 시내를 거닐며 느낀 정서가 비슷한 듯 나에게는 없는 전쟁의 공포가 잘 담겨있어서 놀랐다.
# 호텔에서 끼적인 구절들 #
교토는 운이 좋았다.
행운도 따랐고, 고궁도 있다.
날개 달린 지붕과
열을 지어 늘어선 계단도 있다.
중략
한 남자의
진심 어린 눈물이 있었다.
유적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중략
적어도 히로시마보다는 아름다운 도시임에
분명한 교토는
그렇게 해서 구원될 수 있었다.
중략
느닷없이 공포가 나를 엄습하는 이 도시에서
내가 알고 있는 단 한 가지 사실
이곳은 교토가 아니라는 것
틀림없이 교토가 아니라는 것
p149~152
# 가장 이상한 세 단어 #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p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