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추크 < 방랑자들 >

노벨문학상 수상 여성작가 작품 읽기

by 리단쓰

< 방랑자들 >이라는 올가 토카르추크가 쓴 책을 만났다.

작가의 이름도 쉽게 입에 붙지는 않았고 책의 엄청난 분량에 한번 더 어려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방대한 페이지의 책 분량이 조각조각 단편으로 구성되어서 그나마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괜찮았다.

방랑자들 책 속의 내용들이 116편의 에피소드로 엮어지는 구성이라니 흐르듯 읽히는 장점이 되었다.

글의 양식과 용어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난해함도 있었지만 흐르듯 써 내려가는 스킬에 다가갈 수 있는 면도 있는 독서였다.

소설 기법보다는 기행문처럼 여행소감이나 단상의 내용이 많은 방랑자들이라는 책은 분류에 있어서 새롭게 알게 된 용어도 접하게 되었다.

여행기, 여행 안내서라는 형식의 글로서 불리는 '이티네라리움'이라는 생경한 단어로 충분히 이해가 되는 책이었다.

엄청난 묘사력과 사고력도 보이고 거기에 더해 상상력의 범주는 놀랄 정도로 펼쳐지는 600쪽이 넘는 방대함에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가적 필력은 대단한 정도였다.

책 속의 어떤 한 부분으로 시작해도 연이어 엄청난 글들을 엮어나갈 수 있는 단서들이 곳곳에 장전되어 있으니 든든한 글쓰기 자산이 되어줄 내용에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해부학 부분의 글들은 묘사도 버겁고 재구성하며 이해하는 회로도 상당히 어려웠지만 작가의 묘사력이라는 부분으로 이해하니 존경스럽기도 하였다.

똑같은 시간 속에서 만나는 순간마다 어쩜 그리 풍요로운 관찰과 묘사가 가능한 건지 읽는 순간 이끄는 대로 줄을 잡고 어딘가 미로로 따라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작가의 시선으로 단서를 잡아내고 그걸 기점으로 주르륵 묘사해 나가는 추진력은 최고의 재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독서하는 내내 마음속을 차지하였다.

역시 토카르추크의 작품관은 본인 스스로도 기묘함을 선호하고 보편성을 지양하는 관점을 선호하는 작가였다.

새로운 관점으로 묘사하는 내용들이 방랑자 책을 읽는 내내 가득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대인 50대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심지어 한강 작가와의 인연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게 되니 무언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남다른 면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한강 작가가 흰 소설을 집필하며 묵은 나라가 폴란드였고 그 시기 북 콘서트를 열었을 때 토카르추크가 진행자로 참여하였다니 놀라운 사실이었다.

두 작가 모두 시인으로 등단해서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니 흥미로운 평행이론으로 회자되기도 하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방랑자들 완독 후 얼마 큼의 알갱이들이 내 사유의 바닥에 잠겨있을지 명확한 모습은 헤아릴 수 없지만 분명코 알록달록 자욱들로 뿌듯해진 독서였다.

'블라우 박사의 여행' 에피소드는 낯선 느낌이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기괴함이라는 느낌으로 남겨두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는 ' 신의 구역'이라는 441쪽부터의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류의 서사에 마음을 두는 성향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오래 되새기게 되는 에피소드는 368쪽부터 쓰이는 '방랑자들 '이라는 에피소드 부분이었는데 제목으로 뽑은 이유가 있을듯한 주제가 느껴졌다.

주인공 아누슈카가 버거운 현실 속 탈피를 시도하는 묘사들이 찡한 마음이었다.

그녀가 되돌아갈 주소를 잊어야만 완전 탈출인데 역시 잊을 수 없는 주소가 현실인 것인가?

600여 쪽의 책을 읽으려고 펼쳐든 첫 번째 에피소드

'여기 내가 있다'라는 시작점에 나온 서너 살의 시간부터 촤측 흐르듯 전개되는 연대기적 구성일 거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지만 결국 핵심은 내가 있다는 전제가 아닐까 정리해 보았다.


나는 서너 살이다 p11


아누슈카는 버스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다리를 건넌 뒤, 여러 차선으로 이루어진 고속도로를 걷고 또 걸었다.

마치 다리가 하나도 없는, 큰 강의 기슭을 걷는 느낌이었다.

우는 건 나중에, 정교회 예배당의 어두운 구석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기에 그녀는 이 순간의 행군을 즐겼다. p377


그 순간 그녀가 가방에서 샘플을 꺼내어 적정량을 주사기에 주입했다.

그의 정맥에서 수액 주사기를 빼고 자신이 가져간 액체를 서서히 그에게 주사했다. p483


'내가 어디에 있든 중요치 않다.' 어디에 있는지 상관없다. 여기 내가 있으므로. p625


방랑자들의 기본 속성은 떠남이고 새로움을 얻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작가는 여행을 별자리를 하나씩 그어가며 모양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듯이 내 안의 다양한 별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랑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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