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만약 인간에게도 순환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앞으로만 흐르는 우리의 시간도 결국 멈추는 날이 온다.

by sandra

가을의 끝자락, 일 년 만에 한국을 찾은 오랜 친구 부부와 함께 점심을 나눈 후, 우리는 석천호수의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서서히 거닐었다.

바람 속에는 이미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싸늘함이 묻어 있었고, 바람 끝엔 겨울의 기운이 살짝 스쳐갔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마음은 점점 오래된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젊은 날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앞만 보고 살아오느라, 나이 드는 것도 잊고 살았다며, 지나온 시간의 아쉬움과 열심히 걸어온 날들에 대한 뿌듯함에 예전처럼 서로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매년 짧은 한 달을 머물다 가는 미국의 친구 부부, 계절이 점점 차가워질수록 사람의 온기가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 오랜 친구와 나눈 대화는 생각보다 더 깊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조용히 나누며 전해지는 위로가 가장 오래 남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석촌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벚나무,

봄에는 분홍빛 벚꽃이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연둣빛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 나더니...

젊음을 쏟아내던 윤기 흐르던 잎들은 이런 시간이 무색할 만큼 푸석푸석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곧 단풍이 들고, 그 잎들도 결국 바람 따라 하나, 둘, 땅으로 떨어지겠지

문득 벚나무 가지를 바라보다가 사람의 삶이 떠올랐다.

우리는 앞으로만 흐르는 시간 속에 갇혀 살아가지만 , 그마저도 결국 멈추는 날이 온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나무는 해마다 젊고 늙음을 반복하는데 인간은 한 번의 삶을 되돌릴 수 없다.

만약 인간에게도 나무처럼 순환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반복 속에서도 같은 실수나 후회를 되풀이하게 될까?


*깊어가는 가을 저녁, 아들이 보내준 하몽 한 점에 와인 한 잔, 우리 부부의 대화는 익어가고 , 마음은 잠시 느긋해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머니,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더 잘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