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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곁으로 돌아온 오빠, 이제 어떻게 보내야 할까

기적을 바라며, 그리움과 후회 속에서

by sandra

오빠가 50여 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3년이 됐다.

20여 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오빠가 먼 거리를 오가는 것이 불편해, 우리 6남매는 매달 한두 번 오빠와 남동생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며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5달 전만 해도 건강하던 오빠가 다리가 아프다고 정형외과를 찾고, 목이 아파 감기 같다며 내과를 가도 차도가 없었다.

결국 종합병원에 가서야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낯선 병명을 듣게 됐다.

처음 듣는 병명이었지만 , 그래도 치료하면 몇 달 안에 회복될 줄 알았고, 근처에 사는 착한 남동생 부부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며 형제들이 힘을 합해 최선을 다했다.

조금 회복기가 있던 오빠가 간병인을 내보내고 다시 힘들어 보였다

간병을 본인이 직접 하겠다는 고집 센 올케언니와 보험도 있는데 간병인이 꼭 필요하다는 우리는 올케를 설득해야 했고, 여자 간병인은 안된다는 올케와 갈등도 있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주일 전 오빠를 찾아갔을 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오빠와 손을 잡고 한 시간 함께 있었던 것이 오빠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그 후 다시 한번 병원 근처로 갔지만 오빠가 힘든지 일요일에 만나자고 한 말이 전화로 들은 오빠의 마지막 목소리가 되었다.

형제들로부터 새로 온 남자 간병인이 일을 잘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오빠에게 ㅋㅌ을 보냈다.

"오빠, 언니하고 통화했는데 마트도 다녀오고 잘 지낸다니까 걱정 마세요

언니는 우리가 잘 챙겨줄 테니 오빠는 몸 회복에만 신경 쓰세요"

"알았어" 오빠의 답은 짧았다.

그게 오빠와 나눈 마지막 ㅋㅌ이었다.

혹시 기운이 없나? 왜 이렇게 답을 짧게 하지? 은근히 걱정이 되고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그런데 어제 아침, 오빠가 패혈증으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이 왔다.

급히 형제들이 모여 면회를 가보니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온몸에 관을 연결한 오빠를 바라보며 형제들은 한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돌아왔다.

미국에서 온 딸이 열흘 넘게 아빠 곁을 함께 했고, 이어서 작은아들이 와서 열흘을 아빠와 함께 있다 지난 주말에 돌아갔다.

오늘은 큰아들이 찾아왔지만 혼수상태에 놓인 아빠를 바라보며 조금만 더 일찍 올 걸 하는 후회 속에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전날까지도 큰아들이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아들이 물을 많이 마시니 넉넉하게 준비해 두라"라고 당부하던 자식 사랑이 남달랐던 우리 오빠,

딸을 낳고 아들 쌍둥이를 낳은 오빠에겐, 엄마와 함께 동생을 기른 딸이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다.

내일 아침, 미국에서 딸이 다시 오고, 가족들은 오빠의 연명치료에 대해 함께 의논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오빠의 생명을 의논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되고 믿기지 않는다.

편안하게 갈 수 있게 고통에서 구해줘야 하는지, 연명치료를 해야 하는지...



20대에 군대를 다녀온 뒤 회사 파견으로 괌에 가 아들, 딸 낳고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 오빠,

아이들이 모두 착하게 잘 자라 미국본토에서 국세청 공무원으로 일하고 , 오빠는 정년퇴직 후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가

그리웠던 형제들 곁으로 돌아와 정말 기뻐했던 우리 오빠였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는, 매일 회심곡을 들으며 아들을 그리워하시던 우리 엄마,

또 아들을 외국에 보내고, 그 시절 제대로 전화통화조차 못하시던 엄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얼마나 아들이 그리우셨을까?

내가 나이가 들고나니 조금이나마 엄마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오빠는 군대에 가서 월급을 모아 내 졸업선물로 금반지를 사주었고, 나는 오빠가 제대하면 양복 맞춰주겠다며 용돈도 모았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오빠 5년, 아니 3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 기적을 내려 주세요. 간절히 기도 합니다.

엄마, 엄마가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아들 꼭 지켜주세요.

오빠가 예전에 사놓은 아파트가 재 건축돼서 다음 달 12월 초에 입주예요. 기다리던 아파트에 입주도 못 해보고...

미국에서 갖고 온 오빠 애장품들은 아직 풀지도 안은채 창고에 있어요

한국에 처음 와서는 원룸에서 지내다가 한두 달 후에 오빠 마음에 드는 조금 넓은 곳으로 옮길 계획이었지만, 지금껏 원룸에서 살았어요.

어떡해요, 우리 오빠!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넓은 데서 살게 할걸...

오빠, 모든 식구가 울면서 기도하고 있어요

제발 회복되어 오빠가 기다리던 새 아파트에 들어가 애장품도 모두 예쁘게 진열해 놓고 , 아들 딸도 찾아와 즐겁게 지내셔야지요.

오빠! 제발 제발 힘내서 버티어 주세요. 우리 모두 애타게 오빠를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되새기며, 이렇게 할걸, 저럴게 할걸... 걸, 걸, 걸, 끝없는 후회 속에서 가슴이 메어 울고 또 울며 지나온 나의 어리석음을 되돌아본다.

나의 어리석음은 언제쯤 치료될 수 있을까?


* 사랑하는 우리 오빠, 하루빨리 회복되어 3년만이라도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는 기적을 허락해 두세요.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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