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없이 울게 만든, 예쁜 양주 세 병

오빠의 새 아파트에 진열돼 있어야 할 예쁜 양주가...

by sandra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 속에서 한강은 회색빛 안개에 젖어있,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무겁게 내려앉은 채 김포를 향해 간다.

언제나 즐겁고 들뜬 마음으로 향하던 육 남매 형제모임이 오늘은 서로 다른 감정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며 마음

한편을 눌러 온다

오늘은 둘째 언니의 생일이라는 기쁨이 있는 날이면서도, 불과 20일 전 남편을 잃은 큰 올케언니가 내일이면 미국에 있는 아이들 곁으로 떠나는 슬픔이 함께하는 날이다.

오늘의 만남은 기쁨과 이별, 오빠가 없는 아쉬움이 한자리에 겹쳐진 복합적인 무거운 시간이 된다.

그래서인지 차창 밖으로 흐르는 겨울비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고여 있는 눈물의 감정들을 대신 흘려보내는 듯하다.

나이 들어 형제들과 어울리며 편안한 노후를 꿈꾸며 한국으로 돌아왔던 올케언니는 남편을 잃고 다시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떠나는 올케 언니를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 또 어떤 마음으로 보내야 할지...

어려서 보따리를 싸서 남편을 따라 으로 건너가 아이들을 낳고 살았고, 세월이 흘러 오빠가 정년퇴직 후 또다시 보따리를 꾸려 미국 본토, 자식들 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 속에서 , 나이가 들수록 마음 한 구석에서 점점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갔을 것이다.

결국 그리움을 안고 다시 보따리를 싸, 형제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고향의 즐거움은 고작 삼 년뿐, 남편을 잃고 난 뒤, 올케 언니는 또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이번에는 선택이라기보다 삶이 밀어내는 길이었고, 보따리조차 제대로 꾸릴 겨를 없이 떠난다.

내 손때 묻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남기고 떠나는 마음, 그 무게는 보따리를 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올케 언니가 긴 이동의 삶 끝에 남은 여생만큼은 더 이상 떠밀리지 않고, 자식들 곁에서 마음 놓고 쉬며, 편안하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오빠가 병원에 입원한 뒤 조금씩 차도를 보이며 음식용 목줄을 뺄 무렵 올케는 본인이 직접 간병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결정을 말리고 싶어 올케에게 절박한 마음으로 30여 분간을 울면서 설득했다

"언니, 길랑바레 증후군은 초기에 치료가 정말 중요해요. 최소한 목줄을 뺄 때까지만이라도 간병인을 그대로 두는 게 좋아요"

"언니도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던데 , 집에 혼자 있기 힘들면 우리 집으로 오세요

내가 언니 몸도 챙겨줄게요

그래도 언니와 나는 외국생활을 오래 해서 서로 통하는 것도 많잖아요"

말을 잇는 내내 올케언니와 나는 서로 울면서 통화를 했다.

그러나 사흘 뒤, 올케언니는 형제들과 오빠와도 상의 없이 간병인을 내보내고 올케가 간병을 시작했다.

한 치 건너 우리는 형제고 와이프가 먼저니 우리 형제들은 '저건 아닌데' 하는 답답함이 쌓여만 갔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곁에서 돕는 것이었다

"언니가 건강해야 오빠 간병도 할 수 있어요. 잘 챙겨 먹야야 해요." 그렇게 말하며 반찬을 만들고 과일을 사다 병실 냉장고에 넣어주며 올케언니를 다독였다

오빠도 내가 이렇게 올케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고, 그 마음이 병을 이겨내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오빠의 건강이 서서히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나는 형제들과 상의한 끝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코칭에서 배운 것들을 떠올리며 올케를 설득할 대화의 내용을 노트에 빼곡히 정리했다.

또 혹시 올케가 서운해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말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반찬을 만들고 병원 근처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병원으로 오빠와 올케 찾아갔다.

"난 정말 그만 살고 싶어"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오빠 손을 잡고 " 대장암도 이겨냈잖아요, 오빠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어요. 오빠 옆에 우리가 있잖아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으며 한 시간 동안 오빠를 위로하고 올케를 설득했다.

간병인을 부르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그러나 그것이 오빠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손끝에 남아 있던 오빠의 체온이 오래도록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데...




열흘 남짓 남자 간병인이의 도움을 받던 중, 갑작스럽게 오빠는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 옮겨졌다

산소 호흡기를 낀 채 누워 있는 오빠를 바라보며 혹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을 집어삼켰다.

간병인 문제를 두고 른 형제들 역시 거듭 부탁했고, 또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울면서 애원하듯 부탁했다.

그 과정에서 쌓인 배신감과 원망은 점점 커져만 갔고, 오빠를 향한 걱정과 올케에 대한 반감이 뒤엉켜 , 내 마음은 마치 출구 없는 지옥을 헤매는 듯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만약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 나는 올케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와중에도 애절해하는 언니, 동생들이 지쳐 쓰러질까 봐 걱정이 돼 비타민을 챙겨 먹게 했고,

오빠 딸에게도 비타민 한 박스를 건네며 "너희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이니 하루에 하나씩 챙겨 드리고 너희들도 잠도 제대로 못 자는데 하나씩 챙겨 먹어"

그러면서도 나는 올케와 같은 식탁에 앉지 않았고 눈빛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오빠의 장례를 치른 뒤에는 전화도 한번 안 했다

오빠가 떠난 이유가 모두 올케 때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미움으로 결국 나 자신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오빠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떠난 지 모두 합처서 한 달 남짓 되는 날이다.

언니들이 나에게 조용히 당부했다.

"인명은 재천이야. 떠날 사람은 떠나는 거고, 그동안 올케도 많이 고생했으니 이제는 따뜻한 마음으로 미국에 보내자"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내일 미국으로 떠난다며 인사를 건네는 올케언니를 마주하자, 그동안 억눌러 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올케언니의 손을 꼭 잡고 "언니, 우리는 이제 지는 해예요. 미국 가면 자식들이 하자는 대로 하시고 건강하고 편안하게 잘 지내세요"하며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렇게 헤어지며 올케가 차에 실어준 양주을 싣고 돌아오는 길,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모두 뒤섞인 채 눈물에 젖어 이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뒤 거실로 나오니, 남편이 예쁜 용기에 담긴 고급 양주 세병을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하면서 숨이 막혔다.

오빠 새 아파트에 진열돼 있어야 하는 예쁜 양주가 왜 여기에...

나는 참을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올라 울고 또 울었다.

미국에서 만날 때마다 늘 예쁜 고급 양주를 건네주던 오빠가 떠난 뒤에도,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나에게 예쁜 양주를 남겨 주다니...



* 나를 울게 한 예쁜 양주병, 떠나간 오빠는 말이 없고 , 남겨진 마음은 한없이 애틋하다 *





















매거진의 이전글화투판에서 피어나는 가족의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