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판에서 피어나는 가족의 온기

화투 치는 소리 그 옆에 조용히 차려진 와인상

by sandra

매년 연말이면 우리 집에는 기분 좋은 북적임이 가득하다.

시댁식구들과 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 다시 우리 집으로 자리를 옮겨 디저트파티를 여는 것이 어느덧 4년째가 되었다.

해마다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는 늘 조금씩 다른 표정과 이야기가 담긴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마음이 무거웠다

오빠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않은 상태였고 괜히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버겁고 음식을 차릴 의욕도 없었다.

그냥 흘려보낼까, 조용히 지나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마음을 내어 시댁 식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슬픔 속에 혼자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조금이라도 숨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깃집에 모여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우리 집에 들어서신다.

거실 한가운데에 둘러앉은 시댁 식구들은 어느새 화투판을 펼치며 한바탕 놀이를 시작하신다.

화투패가 섞이는 소리, 누군가의 웃음소리, 누군가의 장난스러운 이야기가 오랜만에 집안을 채운다

그사이에 나와 동서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재료들을 꺼내 정성스럽게 와인 파티 상을 차려 나간다

예전에는 식구들이 왜 저렇게 화투를 재미있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 그저 신기하게만 바라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친정 식구들은 모이면 식사를 하고 커피숍에 앉아 한두 시간 정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곤 한다.

반면 시댁 식구들은 화투를 매개체로 삼아 더 길고 깊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패를 맞추는 사이사이 어릴 적 평창동에서 보냈던 옛 시절 이야기부터 요즘 근황과 소소한 일상까지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나오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화투라는 것이 단순히 승부를 겨루는 게임을 넘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참 유익한 오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감정이 한 장에 웃고, 한 판에 아쉬워하며, 그 모든 흐름이 결국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든다.

남편은 적은 금액이지만 돈을 따면 잃은 분께 슬쩍 돌려 드리고, 이건 이겨야 재미있는 게임이 아니라 함께 즐겨야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한다.

또 돈을 조금 잃으면 재미있게 즐긴 게임비란다.

슬픔 속에서도 다시 마주한 이 북적거림, 화투판 위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이야기들이 오늘따라 더 깊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런저런 온기 덕분에 또 한 해를 견뎌내고 다시 새해를 맞이할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거실에서는 시댁 식구들의 화투판이 무르익고 장난스러운 투정과 웃음이 오간다.

그 소리를 배경 삼아 테이블 위에는 과일 하나, 안주 하나에도 마음을 얹고, 색을 맞추고 온도를 맞추며 와인 파티상이 차려진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는 화투놀이로 마음을 품고 누군가는 상차림으로 행복한 마음을 건넨다.

해가 바뀌기 전 마지막 하루, 시댁 식구들과 이렇게 웃음과 정겨운 말이 오가며 따뜻함을 이어간다.


* 와인병을 여는 순간의 작은 설렘, 잔을 부딪히는 맑은 울림, 그리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와인 상의 화려함, 이 모든 것이 함께하는, 시댁 식구들과의 연말 디저트파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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