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함께 건너온 오십 년의 시간
올해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이토록 실감 날 수가 없다.
올 한 해의 일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글을 쓴다.
지난 3월 미국에 사는 아들 내외, 손녀와 파리에서 만나 금혼식 여행을 함께했다.
부부로 맺어져 5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건너온 우리의 금혼식을 기념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보름 남짓 이어질 여정의 첫 기착지는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하얏트 호텔.
설렘과 피로가 섞인 마음으로 문을 연 객실 안에는 우리의 반백 년을 축하하는 샴페인과 케이크 그리고 아이처럼 마음을 들뜨게 하는 풍선이 놓여있었다.
파리에서 마주한 그 따스한 환대는 우리가 함께 걸어온 50년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다정하게 위로해 주는 듯했다.
파리는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평생 사업에 매진하느라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에게 , 기억 속의 파리는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달려야 했던 직선의 도시였다.
그때의 나는 파리를 보았으나, 동시에 파리를 보지 못했다.
일을 향해 고정된 시선은 아름다운 파리가 건네는 말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금혼식 여행에서 아들네 식구들과 손을 잡고 걷는 파리는 비로소 '곡선의 도시'로 다가왔다.
일할 때는 무심코 지나던 박물관, 미술관,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을 넘어 작은 광장에서 낡은 건물 하나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예전엔 일에 지쳐 이름만 듣고 지나쳤던 파리의 구석구석을 한눈에 담았다.
파리는 도시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그 안을 걷는 우리는 잠시 일상의 시간이 아닌, 오래된 미술관 속을 거니는 듯했다.
이것은 단순히 관광의 깊이가 깊어진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속도가 아들의 자상한 마음에 맞춰지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아들은 여행 내내 서두르지 않았다.
박물관, 미술관을 함께 둘러본 뒤에는 우리를 호텔에 들어와 잠시 쉬게 해 주었고, 아들은 다시 박물관, 미술관으로 행했다.
몽마루쥬 언덕은 택시로 오르게 했고 조금이라도 먼 거리는 주저 없이 택시를 불렀다.
아들은 이미 여러 번 파리를 경험했다며 모든 일정의 중심을 우리 부부에게 맞췄다.
자상한 아들은 부모가 혹여나 불편할까 봐 걸음마다 세심하게 살피고 , 우리를 편안하게 쉴 수 있게 챙겨주었다.
아들의 손길이 닿은 모든 여정은 더없이 흡족했다.
금혼식을 기념하여 파리에서 마주한 하얏트호텔의 만찬은 완전한 미식의 향연이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주방은 셰프의 철저한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공간이었고 , 특히 핀셋 하나로 세밀하게 데코레이션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또 그 결실을 담아내는 식기들의 우아한 곡선과 질감은 셰프의 섬세한 플레이팅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완벽한 배경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정중한 인사와 함께 건네받은 금빛 용기의 켄들 두 개.
그 안에는 하얏트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공간을 채우던 그 특유의 은은하고 지적인 우드향이 담겨 있었다.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향, 한국으로 데리고 와 현관 한편에 놓아둔 그 초는 불을 밝히지 않아도 향을 은은히 내뿜으며, 문을 열 때마다 그날의 추억이 이 작은 향기 속에 머물러 있었다.
파리에서 맛본 최고의 바게트는 여전히 잊을 수 없는 미각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어서 도착한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에서는 아들의 배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얏트호텔 앞에서, 오직 우리 가족만을 위해 예약된 보트에 올랐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선장은 무릎 위에 담요를 덮어 주며 추우면 선실로 들어가 따뜻한 차를 마셔도 된다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보낸 두 시간의 향해, 금혼식을 맞이해 아들이 선물해 준 그 다정한 시간 속에서, 우리 부부는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평소 아내와 딸에게 다정하기로 이름난 아들은, 이번 여행에서는 유난히 우리에게 더 많은 마음을 쏟았다.
집을 나서기 전, 가죽들끼리 이미 마음을 맞추었는지, 곁을 지키던 며느리와 손녀는 특별한 일로 여기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부모를 향한 아들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기꺼이 마음을 내어준 며느리와 손녀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일정을 마치고, 파리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아들은 미국으로 우리는 아쉬움을 가슴에 품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아 마음속에 머물렀다.
"난 정말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번 여행이 제일 좋았어요" 나의 말에 남편이 툭 던지듯 대답했다.
"그럼, 아들하고 간 여행이 여행사 따라가는 여행하고 비교가 되겠어?"
그 짧은 한마디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자식을 잘 키워냈다는 뿌듯함, 아들가족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오직 가족만이 줄 수 있는 안온함까지.
남편이 말했듯, 이것은 여행사가 제공하는 그 어떤 일정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여행사의 가이드가 파리의 역사를 설명해 준다면 , 아들은 우리의 삶을 배려하며 파리를 보여주었다.
아들의 듬직한 뒷모습을 이정표 삼아 구석구석을 누비는 동안, 나는 내가 일구어온 50년 세월이 자상한 아들 모습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든 듯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본 것은 파리의 구석구석을 더해 , 그동안 일에 매여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 삶의 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파리 여행은 우리 부부가 함께 건너온 오십 년 의 시간을 축하해 주는 더없이 귀한 금혼식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파리에서 금혼식을 맞은 올해는, 내게 유난히 많은 장면을 남겼다.
글쓰기는 나를 다시 현제로 불러냈다.
코칭이라는 배움의 자리는 나에게 삶을 대하는 태도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의 끝에는, 오빠와의 가슴 아픈 이별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이 해는 기억이 아나라 , 오래 곱씹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하얏트 호텔에서 받은 금빛 용기의 우드향 켄들, 파리에서의 시간이 이 작은 향기 속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