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씀이 내 마음에 머물다 자식에게로 이어져 흐르다

그리운 엄마를 생각하면서

by sandra

딸에게 엄마는 무엇이든 담길 수 있는 크고 깊은 그릇 같은 존재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흔들려도,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도 말없이 받아주는 사람,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엄마가 해주셨던 말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말들은 가르침이라기보다,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든 삶의 태도에 가까웠다.

내가 자라며 엄마에게서 들은 말들이 유난히 가슴에 오래 남아 있는 것도 아마 그 넉넉함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엄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흥얼흥얼 노래처럼 책을 읽으시던 모습, 늘 손에 일을 놓지 못하시던 모습, 오빠를 군에 보내고 회심곡을 들으며 말없이 앉아 계시던 모습이다. 그 장면들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마음에 남아있다.

아주 어릴 적 기억 하나도 떠오른다.

외할머니께서 떡과 땅콩엿을 만들어 들고 오셔서 며칠씩 머물다 가셨다.

아버지가 출근을 하시면 엄마는 시장을 다녀와 할머니 아침상을 따로 차려 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넉넉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해드리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왜인지 모르게 그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오늘은 엄마가 가끔 흘리듯 내게 해주신 말씀 가운데 몇 가지를 적어보고 싶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엄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눈 감고 삼 년, 귀 멀고 벙어리로 삼 년을 살아라."

"부부는 남이다. 싸우면 정 벗겨지니 부부싸움 하지 말고 살아라."

"남편에게 화가 날 때는 숨을 크게 세 번 쉬고 말해라."

"순간을 참으면 하루가 편하고 , 그 하루가 쌓여 삼 년이 편해진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못 산다."

"남자에겐 똑똑한 여자보다 지혜롭고 현명한 여자가 낫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고개를 갸웃할 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들은 , 그 시절 한 여자가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살아오며 체득한 삶의 요령이자 관계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서너 살 된 첫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이가 안방 문갑 위로 올라가 뛰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아이의 등을 한 대 때려 마루로 내보냈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조용히 물으셨다

"다음에 잘못하면 어디를 때릴 거니?" 그 한마디에 나는 움찔했다.

소리 지르고, 맞고 자란 아이들이 더 거칠다. 나는 너희 육 남매를 키우면서 귀퉁배기 한 번, 계집애 소리 한 번 안 하고 길렀다.

그래도 너희들 모두 착하게 잘 자랐다.

그 말씀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내가 둘째로 딸을 낳았을 때 엄마는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남매를 함께 두고 야단치지 말아라."

"동생 앞에서 오라비를 꾸짖으면 동생이 오라비를 우습게 보고, 오라비 앞에서 동생을 꾸짖으면 오라비가 동생을 우습게 본다" 나는 엄마가 가끔씩 건네주던 이 말들을 마음에 새기며 두 아이를 길렀다.


아이들은 어릴 때 친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함께 살았고, 그 덕분에 마음이 곧게 자랐을 것이다.

사춘기 무렵 부모를 따라 외국으로 나가 부모의 손길이 많이 부족했을 텐데도 둘 다 큰 탈 없이 잘 자라 준 것이 ,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나 역시 엄마에게서 들은 말들을 흘리듯 내 아들과 딸에게 건네며 살아왔다.

그리고 보니 아이들 또한 내가 했던 말들을 마음 어딘가 품고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엄마에게서 들은 말씀이 내 안에 머물렀다가 다시 내 자식에게로 이어져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 뿌듯하다

말은 그렇게 시간을 건너 사랑처럼 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에 있는 재료들을 꺼내 남편이 좋아하는 강한 향의 케이준으로 한 접시 만들었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옥수수, 새우, 오징어에 양념이 스며드는 동안 주방에는 이국적인 향이 천천히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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