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아닌 듯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는 나이

나이가 들수록 배워가는 마음의 자세

by sandra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 몸이 그만큼 오래된 물건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낡은 부품을 갈아 끼우듯 , 우리는 가끔 멈춰 서서 몸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남편은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6개월마다 심장검사를 받고 약 처방을 받아온다.

늘 그래왔듯 이번 검진에서도 평소처럼 약처방을 받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검사를 한 뒤, 심장혈관 조영검사를 위한 일일 입원을 권하셨다.

조영검사 후 결과에 따라 당일 퇴원을 할 수도 스텐트 시술을 하게 되면 하루이틀 더 입원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20일 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세면도구등 짐을 챙겨 병원 문을 들어섰다.

남편은 평소 오후 산책을 하고 15층 높이의 아파트 계단을 걸어 올라와 "설마 별일 없겠지, 나이 들면 많은 사람이 고혈압과 고지혈증은 있으니..." 하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시술을 마친 의사 선생님은 보호자인 나를 불러 모니터를 보여주셨다

혈관에 풍선을 넣었다는 설명과 함께 내 어깨를 다독이며 "며칠 쉬면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친절히 말씀해 주셨다.

안도감도 잠시, 보호자 대기실로 나오니 남편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병실에 있던 짐을 정리해 중환자실로 옮기고 내일 아침 면회시간에 얼굴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마 전 오빠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기억이 겹쳐지며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남편의 소지품을 간호사에게 맡기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중환자실 앞에 앉아 있었다.

앞에 있는 문 하나가 참 멀게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톡을 보냈더니 바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 나 괜찮으니 까 걱정 말고 집에 가서 쉬어" 수화기 너머 남편의 목소리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혼자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창밖의 풍경이 유난히 낯설었다

'아, 이게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어둠이 내린 거실에 혼자 앉아 있으니 지난 세월과 다가올 날들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늦은 밤 남편은 다시 전화를 걸어와 내일 퇴원하니 , 날씨도 춥고 병원은 공기도 안 좋으니 병원에 오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다음 날, 나는 남편을 위해 정성껏 점심상을 준비했다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 남편은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 병원에 가 결과를 확인하고 온 사람의 표정으로 집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한국의 의술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안도감이 들었다.

중환자실에 머무는 이유는, 혈전이 생기지 않는지, 손목으로 들어간 자리에서 출혈이 없는지 등을 의료진이 계속 지켜본다고 한다. 그래서 중환자실은 몸이 새로운 혈류에 안전하게 적응하도록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보는 '회복의 관찰실' 같은 곳이라고 한다.

낡아가는 몸을 달래며 사는 것 , 예상치 못한 병원행에 담담해지는 것, 이제는 나이가 들며 겪어야 할 일들을 차분히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시간 속에 들어와 있음을 느꼈다.

요즘 오후가 되면 남편과 함께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 몸의 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여 들으며 이렇게 늙어가는 모습을 서로 보듬어 주며 살아야겠다.


*오늘 점심은 내가 구운 따뜻한 치즈빵과 우유 한잔, 빨간 방울토마토와 계피기루가 살짝 내려앉은 바나나를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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