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남편은 조형 검사 후 풍선시술을 받았다.
열흘이 지나 시술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고, 시술 후 결과를 살피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다시 받았다.
다행히 결과가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남편이 '병원에서 받은 서류 당신이 갖고 있지? 그것 좀 줘"
"네" 하고 대답은 했는데 가방이 없다
남편이 검사받는 시간에 읽어 보려고 책을 갖고 갔고, 그 책사이에 서류를 끼워 났는데...
이방 저방을 다 찾아보고, 가방을 보관하는 장 속까지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가방을 안 갖고 온 것 같아요"
"내가 확인하고 차문 닫았는데" 하며 남편은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백화점 매장에서 쇼핑한 물건이 든 백을 받아 들고 정작 내 가방을 두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머릿속이 엉키듯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핸드폰을 들어 매장에 전화를 하려다 생각하니 , 분명한 것은 내 손에 핸드폰이 들려있다는 사실이었다.
핸드폰이 있다는 건 가방을 갖고 귀가했다는 증거다.
그 순간 안갯속 같았던 기억에 반짝 불이 켜졌다.
'아!' 가방은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걸어 놓고 책은 무거워서 백화점 들어갈 때 차문 옆에 넣어 놨어요"
나는 병원을 다녀오면 항상 가방은 베란다에 걸어 놓고 옷은 스타일러에서 살균하는 습관이 있다.
남편이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 아, 기억이 안 나면 치매지만 기억이 나면 건망증이래요" 가벼운 농담으로 웃어넘겼지만 돌아서는 마음 한 구석에는 회색빛 쓸쓸함이 내려앉았다.
흐르는 시간 앞에 나의 모든 인지 능력이 조금씩 마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은 생각보다 서글픈 일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기억의 영토를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색빛으로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을 때마다 나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주문을 외운다.
나는 오늘도 브런치 글을 쓰고 , 코칭을 공부하며 타인의 삶을 헤아리고, 독서 모임에서 책을 읽고 지혜를 나눈다.
가끔은 나를 위한 쇼핑도 하고 가벼운 운동도 한다.
오늘 같은 작은 해프닝까지도 브런치의 글감이 되었으니, 이 또한 글을 쓰는 즐거움이 아닐까.
* 나를 위한 가장 고요한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