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51년째 결혼기념일
미국에서 건너온 아들 내외가 부모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청담동의 조용한 식당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넓은 접시 위에 놓인 한입의 음식들이 마치 오늘의 이야기를 천천히 열어주는 인사처럼 느껴지는 미슐랭 레스토랑 밍글스에서 시작된 식사는 그 자체로 지극한 정성이었다.
우리나라 전통 식재료인 간장, 고추장, 된장을 서양식 조리법에 접목한 이곳의 요리는 기대보다 훨씬 조화가 부드럽고 깊은 감칠맛이 났다.
또 입안 가득 퍼지는, 고급스러운 풍미가 감탄을 자아냈다.
익숙한 우리의 장이 서양음식과 만나 이토록 우아하고 멋진 예술작품 같은 음식으로 재 탄생 되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사용된 식재료를 담아내 설명하고 , 음식이 나올 때마다 식재료와 조리법을 세심하게 설명해 주는 친절함 또한 식사의 품격을 더했다.
얇게 올린 트러플 향이 먼저 다가오고 부드러운 한우 한 점은 천천히 입안에서 녹는 듯 부드러웠다.
작은 젤리 한 알에는 깊은 육수의 맛이 담겨있었고 막걸리와 어우러진 소스가 또 다른 맛의 향연을 펼쳐냈다.
우리가 트러플 향을 좋아한다며 여러 음식에 트러플을 추가해 얹어 주기를 주문하는 아들의 세심한 배려도 고마웠다.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은, 단맛과 장의 깊은 풍미가 만나 어우러지면서 의외로 인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결혼기념일을 위해 준비해 준 작은 하트모양의 케이크와 귀여운 촛불은 공간의 온도를 한층 더 높여주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한 접시 한 접시의 음식은 마치 여러 계절의 풍미를 펼쳐 보이듯 다채로웠고, 그 위로 우리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쌓여갔다.
오랜 시간 함께 걸어온 가족과 나누는 식사라서 인지 작은 한입에도 더 깊은 맛이 느껴졌다.
낯선 나라에서 시작해 아이들을 기르고 바쁘게 살아온 시간들, 어느덧 성인이 된 아이가 부모의 소중한 기념일을 기억하고 이토록 멋진 식사 자리를 마련해 주니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고 따뜻해졌다.
좋은 음식은 결국 사람과 시간을 더 따뜻하게 이어주는 것 같다.
바쁜 일상 속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어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 금빛 접시 위 소고기와 트러플 그리고 막걸리 비스큐 소스의 이색적인 조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