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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Aug 31. 2023

말레이시아에서의 인생접대

제가 오랜 기간 무역업무를 하며 접대도 많이 하고 받기도 많이 했지만 말레이시아의 두 젊은이들에게 받은 접대가 인생최대의 접대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시아 수출 담당 시절의 어느 날 말레이시아 출장이 잡혔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출장비 절약을 위해 단일 국가 출장보다는 한번 가는 김에 여러 국가를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에는 출장을 한번 가면 적어도 5~6개국은 돌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이전 방문지는 인도네시아였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한 저희 일행을 말레이시아 거래선이 공항에서 픽업해 주는 일정이었는데 오후 6시경 말레이시아에 도착해야 할 비행기가 인도네시아 공항 사정으로 인해 결국 자정을 훌쩍 넘어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어 별도로 비행기 지연을 연락할 길이 없어 "거래처는 기다리다 포기하고 돌아가겠지" 라 생각하고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를 타려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짐을 찾아 나오니 거래처 두 명이 피곤한 기색 없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명 모두 젊은 친구들이었는데 한 명은 사장, 한 명은 사장의 친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여서 서로 격의 없는 편한 사이더군요. 얼마나 환한 표정을 짓던지 두 얼굴에서 광채가 빛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희 일행은 너무 미안하고 고마와서 저희를 호텔에 데려다주자마자 그들에게 빨리 집에 들어가고 월요일에 만나자 (도착이 금요일 자정을 지나 토요일이 됨)라고 했는데 그들은 쿠알라룸프루의 주말 야식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고 우기며 기다리더군요. 사실 저희도 좀 쉬고 싶었는데 그들의 의지가 하도 강해 호텔 체크인을 한 후 샤워도 못하고 호텔에서 나와 함께 야식을 먹으러 갔습니다.


쿠알라룸푸르의 야식당은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빈자리가 없을 만큼 번잡했고 사람 사는 분위기로 가득했습니다.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기름에 튀겨 만든 매운맛 게요리에 하이네켄 맥주를 마시며 있는 애기, 없는 얘기를 하며 즐거운 수다를 떨고 나니 토요일 아침 먼동이 트더군요.  이제 정말로 잘 쉬고 월요일에 보자 했는데 그들은 말레이시아에서는 원래 주말 아침을 시장에서 먹어야 한다며, 토요일 시장 브런치를 같이 먹자고 부득부득 우겨 결국 호텔에서 잠시 수면을 취한 후 다시 만나 그들이 추천한 해장에 좋다는, 신기하게도 정말로 해장 효과가 있었던, 시장 국물요리로 브런치를 먹었습니다. 그 후 저희를 카지노가 위치한 공원으로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겐팅하이랜드더군요) 데려가 생전 처음 슬롯머신을 당겨 보기도 했습니다. 


다음날인 일요일은 국회의원 전용 클럽으로 저희를 초대했는데 알고 보니 젊은 사장의 장인어른이 국회의원이라 그 영향력으로  간 것이더군요. 그곳에서 건식, 습식 사우나를 동시에 이용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는 남탕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모두 남자이니 거리낌 없이 훌훌 속옷을 갈아입는데 말레이시아에서는 타월로 몸을 감싼 후 속살이 보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속옷을 갈아입더군요. 상대를 배려하는 정중한 문화인 것 같아 인상 깊었습니다 그 후 스포츠 마사지 서비스도 함께 받았는데 몸을 꺽을때마다 너무 아파 서로 웃으며 비명을 질러댔는데 이쯤 되니 서로 격의는 거의 없어져 거래처라기보다는 친구들 같은 느낌이 났습니다. 저녁에는 장인의 초대로 말레이시아 국회의원 전용 식당에서 스테이크까지 얻어먹는 인생 최대의 호사를 누렸습니다.  


이렇게 과하지만 진심 어리고 감동적인 대접을 받고 나니 저도 사람인지라 같은 조건이면 이 거래처와 업무 진행을 하게 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얼마 안 있어 저의 담당지역이 유럽으로 바뀌었고 업무관계가 없어지니 이들과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유럽 거래처들의 건조한 업무 스타일을 대할 때마다 말레이시아의 젊고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두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마 지금쯤 한자리하고들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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