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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Sep 01. 2023

냉정한 스위스 거래선

저희 주요 고객 중 하나인 다국적 케미컬 회사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이 회사의 Global buyers meeting에 초대되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출발하게 되었는데 항공편이 마땅치 않아 결국  800 키로를 운전해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날 아침 일찍 출발했음에도 800 키로를 운전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기울어 있었습니다. 처음 방문하는 중요한 업체이고 각국 바이어들이 참석하는 회의라 간단히 회의 준비를 한 후 다음날 아침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유럽 각국의 바이어는 물론 태국 사업장의 바이어까지 참석하여 회의 인원이 10여 명 되었습니다. 이들은 사업장은 다르지만 같은 회사 소속이고 저만 판매자 입장이기 때문에 10:1 대결 양상으로 회의는 진행되었습니다. 각국 바이어들의 질문에 대응하고 협의를 하다 보니 예정된 2시간을 훌쩍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회의실과 구내식당이 가까워서인지 미팅 중반부터 식당 방향으로부터 풍기는 음식 준비 냄새를 맡았는데 제 코의 판단이 맞다면 그날 점심은 돼지고기 스테이크였을 것입니다. 부실하게 아침을 먹었고 10:1의 불리한 미팅에 힘이 부쳐서인지 점심시간 이전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했지만 맛있는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먹는 희망으로 버텨 미팅을 별 탈 없이 마쳤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다들 우르르 일어나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시작해 저도 자연스럽게 그들 무리에 끼어들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저를 현관으로 인도하더니 잘 가라 하더군요.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밝은 표정으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먼 길을 달려와 어렵게 회의에 참석한 것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구내식당 점심에 초대할 것으로 믿은 저는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점심시간에 미팅이 끝나면 의례 점심이라도 함께 하자고 말이라도 하는데 3시간 미팅을 위해 2 3 운전을 마다하고 온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구내식당에서 점심 한번 같이 먹자 하지 않은 그들이,  좀 유치하긴 하지만, 원망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이 거래처 사무실이 외곽에 있어 근처에 식당도 없었기에 씁쓸히 1시간가량 배를 곯아 가며 운전을 하다 맛없는 국적불명의 국수로 점심을 대신했는데 그때까지 아시아 해외영업에 익숙해진 저로서는 문화충격을 경험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우리나라처럼 손님은 배 고프게 하지 않는 문화가 있거든요...


유럽의 모든 회사가 이렇게 매정하지는 않지만 한국이나 아시아권에 비해서는 훨씬 드라이하고 개인적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결국 그날 점심 메뉴가 돼지고기 스테이크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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