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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다소 다혈질인 Mr. Zolt

by 오로라

유럽 국가들은 영국을 제외하고는 같은 대륙에 위치하고 서로 붙어 있지만 국가 간의 문화 및 성향은 상당히 많이 다릅니다.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북유럽 사람들은 다소 냉정하고 과묵한 반면, 남유럽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말도 참 많은데 비즈니스 미팅을 하다 보면 남유럽 사람들이 말이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한마디 하면 적어도 다섯 마디는 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 동유럽 사람들은 과거 공산주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속마음은 따뜻하더라도 표현이 다소 거칠고 직설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제 헝가리 거래선에 Zolt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제는 지역 General manager 가 된 중년의 신사이지만 젊었을 때는 성격이 불 같았고 옷차림도 비즈니스 미팅에 정장이 아닌, 가죽 잠바를 입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특이한 커렉터였는데 이 분과의 첫 만남은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초면에 상호 소개를 하고 미팅을 시작한 지 5분도 안돼 이 친구가 공격적으로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서로 자사의 이익을 추구하려다 보니 업무 미팅을 하다 보면 이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친구는 제 기준으로 초면부터 선을 넘었습니다. 저도 당시 젊은 혈기에 분을 못 참아 "이제 그만하자!"라고 일방적으로 미팅을 끝내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헤어졌습니다. 이후 수차례의 만남을 통해 결국 타협점을 찾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일단 참아야 한다는 저의 모토와는 달리, 첫 만남에서의 저지른 저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서는 아직도 후회가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이 헝가리 친구가 일은 또 잘해 티격태격 하면서도 양사 간의 비즈니스는 지속적으로 성장, 긴장관계와 밀월관계를 오가고 있는 가운데 어느 날 품질 클레임이 발생했습니다. 역시 이 친구의 강한 성향 때문에 클레임 해결협의가 순탄치 않았는데 결국 이 친구가 "법정에서 보자"라는 최후통첩을,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내용증명으로 보내왔습니다. 결국은 수차례 협의를 통해 법정으로 가기 전 해결 방안을 찾았지만 덕분에 그 당시 최악의 크리스마스 및 연말휴가를 보냈습니다.

지금은 서로 다른 영역에 종사하고 있어 업무 접점은 없고 연말/연초인사를 하거나 SNS를 통해 근황을 아는 정도입니다. 요즘 뭐 하는지 그의 SNS를 뒤져 보니 지난여름 이태리 사르데냐에 휴가 간 사진이 있네요. 뒷모습이긴 하지만 금방 알아 볼수 있었으며 반가왔습니다.


과거 수년간 이분과 티격태격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나쁜 감정보다는 나름 재미있었다는 감정이 앞섭니다. 아마 미운 정이 들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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