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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Oct 27. 2023

총격살인 목격담


제목이 너무 섬찟하지만 실제로 제가 겪은 내용입니다. 정확한 날자는 기억이 나지 않고 오래전 겨울로 생각되는데 인터넷으로 사건을 찾을 수 있어 보니 2003년 1월 24일이었네요. 그날 점심 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위성도시인 암스텔페인이라는 조그만 도시의 중국집에서 손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창문 바깥에서 화약이 연발로 터지는 소리가 났는데 저는 중국인들이 신년을 맞이하여 폭죽파티를 하는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순간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했는데, 오토바이 한 대에 헬멧을 쓴 두 명이 타고 있었고 뒷좌석에 탄 한 명이 기관단총을 쏘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과 저는 창문과 벽으로 인해 공간이 나뉘어 있었지만 직선거리로 불과 약 3 미터 떨어져 있었고 그들이 총을 쏘는 방향은 저와 약 10 미터 거리의 길 건너편이었습니다.  불과 2~3초 후 총성은 멈쳤고 범인들을 태운 오토바이는 굉음을 내며 순간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를 비롯한 식당 내 손님들은 반사적으로 땅에 웅크렸고 오토바이가 사라진 후에야 서서히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들이 총을 발사한 길 건너편에는 두 명이 쓰러져 있었는데 한 명은 머리에 총을 맞아 멀리서 보아도 이미 사망한 것 같았고 다른 한 명은 가슴에 총을 맞았는데 몸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식당 내 손님들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려 경찰에 신고를 했고 신고 약 6분 후 (무슨 생각이었는지 제가 당시에 시간을 쟀습니다) 경찰차들과 앰뷸런스들이 요란하게 도착했고 경찰헬기까지 떴습니다. 그때까지는 길건너편에 쓰러진 피해자들과 10 미터 정도 떨어진 식당 안에 있는 저희 사이에 정적이 흘렀는데 길을 걸어가시다가 총격을 목격하신 어느 네덜란드 노인 한분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피해자에게 다가가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 주시더군요. 아마 그 피해자가 체온이 떨어져 추위를 호소했던 것 같은데 뒤늦게 생각해 보니 그 노인분의 용기가 대단했고 헌신적인 성품을 가지셨던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외투는 피해자의 피 때문에 더 이상 입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부상자도 2주 후 사망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식당 손님들은 간단한 경찰 조사 후 돌아갈 수 있었는데 사건 현장에는 무질서하게 흩어진 탄피 및 벽을 맞고 튀어나와 형태가 엉망이 된 탄두들이 떨어져 있어 처참한 당시 상황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사무실로 복귀하기는 했지만 가슴이 떨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다음날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사건 현장에 다시 가 보았습니다. 두 피해자가 쓰러졌었던 자리에는 그들을 추모하는 꽃다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저도 마음속으로나마 그들의 명복 및 쾌유를 빌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총격은 동구권 갱스터들과의 세력 다툼이었고 피해자들도 갱조직 종사자들이었습니다. 범인들은 식당 앞에서 대기하다가 피해자들이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오자마자 사격을 한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피해자들은 저희 일행 바로 뒷자리에서 식사를 했더군요.  


이 사건에 대한 기사는 아직도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암살을 사주한 범인은 잡았지만 실제로 방아쇠를 당긴 범인은 결국 잡지 못했나 보며 당시 범행에 사용했던 오토바이는 암스테르담의 하천에서 발견되었다 합니다.

https://rtva.nl/2019/07/holleeder-schuldig-aan-moord-van-hout-ter-haak-dorpsstraat/


네덜란드는 튤립과 풍차로 유명한, 유럽에서도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인데 미국도 아닌, 이런 평화로운 나라에서 총격 살인을 목격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앞서간 생각이기는 하지만, 만일 범인들이 마음을 달리 먹고 식당 안에서 암살을 시도했다면 피해자들 뒷자리에 앉았던 저희 일행도 무사치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 치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은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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