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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Nov 02. 2023

하루에 최대 매출계약을 한, 다시는 없을 추억

과거 유럽에 식품 원료로 사용되는 산업소재를 판매했습니다. 당시 이 제품군은 3개월 분기 계약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즉 한번 계약이 끝나면 약 3개월 후 신규 계약에 임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시황에 민감한 제품이라 가격이 상승하는 시점에 주로 계약이 되곤 했으며 이 때문에 어느 시점에 갑자기 한꺼번에 계약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격이 더 인상되기 전에 미리 계약을 하려는 구매자들의 성향 때문에).


시장이 꿈틀거려 조만간 계약이 활성화될 것 같을 시기는 웬만하면 출장을 자제하고 사무실 근무를 했는데 그래야 수많은 거래처들과 계약을 하기 용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득이 파리에 출장을 가야만 할 일이 생겼는데 하필 그날 시장이 급격하게 변동, 계약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파리로 이동하는 이른 아침 기차를 타자마자 핸드폰이 울리더니 기차를 타고 내려 이동 중이거나, 거래처와 미팅을 하거나,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서 줄을 서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이메일도 폭주하여 그날 하루는 정말 몸이 하나인 것이 아쉬울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숨을 돌리고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그날 하루 계약한 물량들을 정리해 보니 연 매출의 거의 50 %에 해당하는 물량이 되더군요.  시장 가격이 당분간 강세로 예견한 업체들이 3개월 분기가 아닌, 6개월 반기 계약을 많이 한 결과였습니다. 이후 중국 업체들의 출현으로 공급 과잉 시장으로 전환되면서 구매자들이 단기 계약으로 계약 형태를 전환하여 다시는 그와 같은 대량 계약을 하는 짜릿한 경험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비록 바쁘더라도 파리에 갈 때마다 들리는 오페라 근처의 우동 맛집의 점심을 놓칠 수는 없어 그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날 우동을 먹으려고 줄을 섰습니다. 대기줄에서 정신없이 전화를 받고 떠들어 앞뒤에 줄 선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지만 그날 하루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서 열정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칩니다.  제 회사 생활 중 Best 5에 드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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