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로라 Dec 07. 2023

첫 유럽 출장

90년대에 저는 한국에서 수출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입사 1년도 되지 않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관이 아닌, 참가로서 저희가 직접 부스를 임대해 자사 제품 소개 및 홍보를 해야 하는 출장이었습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첫 번째 해외 출장 자체도 설레는데 그것도 런던이라니 "회사에서 나를 좋게 보고 있구나"라는,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유럽출장에 대한 환상은 런던 호텔에 도착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배려로 싱글룸을 배정받기는 했는데 (당시는 트윈룸으로 2인 1실 출장이 기본이었습니다) 워낙 시설이 열악하여 침대는 한국 평균 체격인 저에게도 작았고 샤워실의 커튼의 반은 고리가 떨어져 나가 너덜너덜했습니다. 또 샤워커튼의 아랫부분의 검붉은 얼룩은 핏자국을 연상케 해 범죄현장이 아니었나라는 의구심까지 들었습니다.  (히치 코크의 영화 사이코의 샤워신이 생각났습니다) 


어쨌든 열악하게 하룻밤을 지낸 후 아침을 먹으러 호텔 식당에 내려갔습니다. 말이 식당이지 테이블이 대여섯 개 정도 있는 소규모 식당이었는데 메뉴는 토스트와 커피, 딱 이 둘이었습니다. 저는 호텔 아침이라면 베이컨도 있고 계란도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실망스러웠고 다음날부터는 근처 맥도널드의 맥모닝으로 아침을 때웠습니다. 


전시회장의 저희 부스는 조명, 테이블등 기본 장치는 설치가 되어 있었지만 제품 홍보물 배치등의 작업은 저희 인원들이 직접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회사 영문명 및 로고가 그려진 지름 약 2 미터의 풍선을 가지고 갔는데 이를 현지에서 바람을 채운 다음 부스 위에 묶어 멀리서도 저희 부스가 보이게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바람을 채우는 것으로서 공중에 뜨지는 못하고 단지 부스 위에 단단히 고정, 부스를 좀 이쁘게 보이게 하고 멀리서도 보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풍선이 워낙 커 입으로는 바람을 채울 수 없었고 비장의 카드로 가지고 간 자전거펌프를 아무리 교대로 펌프질을 해도 풍선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포자기가 된 무렵 한 명이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급하게 주변 전기제품 가게에서 드라이어를 사 와 풍선 입구에 연결, 작동시켰는데 정말 거짓말과 같이 5분도 안돼 빵빵하게 풍선이 부풀어 올랐으며 저희 기대대로 전시회 기간 내내 저희 부스를 찾는 사람들의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습니다. 


전시회가 끝나는 날 최종 정리를 하고 모두 피카디리 서커스로 나가 야경도 구경하고 오랜만에 스테이크와 맥주도 먹으며 서로의 노고를 격려했습니다. 무척 서툴고 긴장의 연속인 사회 첫 해외출장이었지만 이후 그 어느 해외 출장보다도 뿌듯한 느낌을 받은 출장이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만화 "먼 나라 이웃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