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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Dec 12. 2023

2인 1실 숙박의 불편했던 장기 출장

과거 한국에서 아시아 수출 담당을 했는데 1년에 한 번꼴로 아시아 주요 시장들의 고객들을 방문했습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여러 국가 들을 한꺼번에 방문했는데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가 기본 방문 국가들이었고 시황에 따라 국가를 추가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해외출장 시 임원을 제외하고는 2인 1실 숙박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저는 트윈룸에 묶으며 상사나 동료와 한방을 쓰며 일정을 소화했는데 2 ~ 3주간 여러 국가를 도는 장기출장기간 동안 성인 남자 2명이 한방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주니어였기 때문에 팀장님과 함께 출장을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거의 매년 조직개편이 되어 팀장님이 자주 바뀌었기에 수년간 여러 팀장님들을 모시고 짧게는 2주, 길게는 3주 출장을 다녔습니다. 한 번은 당시 또라X 로 불리는 팀장님과 함께 장기 출장을 갔는데 대만이 첫 번째 출장지였습니다. 도착해서 1박을 한 후 다음날부터 거래처 미팅등 일정이 있었는데 도착 첫날 그분과 함께 한방을 쓰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저녁 식사 후 먼저 들어가시라고 하고 저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방에 들어가는 시간을 늦췄습니다. 당시 저는 신혼이었는데 비싼 국제 전화 비용을 감수하고 아내에게 장시간 전화를 걸어 정말로 저 사람과 한방을 쓰는 게 괴롭다고 투덜거리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아마 옛날 정략결혼으로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새색시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싫더군요.


그런데 다 큰 성인 남자들이 같은 방을 쓰는 것은 저도 불편하지만 팀장님도 불편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악명이 높은 그 팀장님도 출장 중 저와 관계가 틀어지면 본인도 고단해진다고 생각해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저에게 친절하게 구셨습니다. 당시 저는 흡연자고 그분은 비흡연자였는데 자기는 신경 쓰지 말고 마음대로 방에서 담배를 피라 하시기도 하고 (당시에는 호텔방 흡연이 가능했습니다) 고단한 일정을 끝내고 호텔바에서 함께 한잔 하며 이 애기 저 얘기하다 보니 인간적인 면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호텔에서는 예약이 잘못되어 트윈 침대가 아닌, 한침대에서 같이 자며  이틀 숙박을 해야 했는데 인간적인 면 유무를 떠나 정말로 어색하고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또 다른 팀장님과 장기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이분은 함께 한방을 쓰는 걸 저보다도 싫어하시어 호텔의 급을 최대한 낮춰, 회사의 예산 한도 내에서 1인 1실로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하고 자유로운 출장을 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격무에 지쳐도 잠잘 때만이라도 혼자 편하게 숙면을 취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피로가 풀리는 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신 현명한 팀장님이셨습니다.  이후 제가 선임이 되어 호텔을 정할 위치가 되어서는 예산이 허락하는 한 1인 1실 출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솔직히 이는 후배 직원들을 위해서보다는 저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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