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마리짜라는 직원과 일을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자분이며 저보다 연상이었는데 거의 10년 함께 일했습니다. 원래 베네수엘라 출신인데 근처 작은 섬나라인 Curacao에서도 한참 생활을 했고 Curacao는 네덜란드 연방이기 때문에 여기서 네덜란드 국적을 획득, 자식들과 어머니와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한 여인입니다. 자식들은 성장했지만 아직 완전한 독립을 하지는 못한 것 같았으며 어머니는 네덜란드 정부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생활이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자식들 애기는 자주 하는 반면 남편 애기는 일절 하지 않아 남편과의 사이를 대충 예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애들 어릴 적에 이미 이혼을 했더군요.
이분은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 번돈으로 베네수엘라에 조금만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네덜란드로 이주 시 세입자에게 세를 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차베스 정권은 포퓰리즘 정책의 일환으로 일정 기간 세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집을 차지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합니다. 물론 모두에게 적용하는 정책은 아니었는데 집주인이 오랫동안 해외에 거주하고 그 집에 세입자가 일정 기간 거주하면 세입자가 집을 무상으로 가질 수 있는, 다시 말해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뺏어 세입자에게 주는 저 소득층을 겨냥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었습니다.
마리짜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현지 변호사를 고용하여 소송을 시작했고 이 때문에 휴가를 내어 베네수엘라를 몇 번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다녀올 때마다 저에게 조국 베네수엘라 실상을 애기해 주었는데 휴지하나조차 만드는 공장이 국내에 없어 수입산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경제는 붕괴가 된 상태이고 병원도 전력 부족으로 제대로 진료나 수술을 할 수 없다 하더군요.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서 부유하게 살 수 있었던 국가가 기간 생산 시설 투자는 하지 않고 오일머니에만 의존하고 인기를 위해 돈만 풀어대다 이 꼴이 나는 것을 보고 정치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으로 지난 몇 년간 국민들의 평균 체중이 10여 킬로그램이나 감소했다는 거짓말 같은 소식도 들었습니다.
마리짜는 변호사의 활동이나 피드백이 시원치 않아 계속 가슴앓이를 하다가 어느 날 베네수엘라 집을 포기했다 하더군요. 일단 정부 정책에 대항하기가 쉽지 않으며 베네수엘라 화폐가치가 너무 떨어져 비록 집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변호사 비용이나 항공료 (소송 때문에 가끔 베네수엘라로 가야 함)를 고려하면 남는 게 별로 없어 더 이상 스트레스받지 않고 포기하겠다는 자포자기적인 결정을 했다군요. 실리 및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씁쓸하지만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저희 회사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반년도 되지 않아 이분이 퇴사를 했습니다. 이사 간 지역이 집과 너무 멀어 너무 힘들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사직서를 냈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사실 이사 후 멀어진 거리 때문에 저도 이분이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집에서 헤이그 기차역까지 전철을 타고, 헤이그에서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 기차역까지 온후 다시 전철을 타고 사무실로 와야 하는, 하루에 6번 전철, 기차를 타고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출퇴근길이 50을 넘은 그분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근무 환경이었을 겁니다.
퇴직 몇 달 후 그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사직서를 낸 것을 후회하며 다시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의중을 간접적으로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이미 새로운 직원이 그 자리에 충원된 상태여서 그분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사직 후 편하게 살기를 바랐는데 그런 요청을 한 것을 보니 경제적으로 삶이 녹녹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더군요. 그 후 연락이 완전히 끊겼는데 이제 자식들이 기반을 잡아 행복하게 살고 계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