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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Sep 11. 2023

믿었던 독일 거래처의 배신

업무를 하다 보면 오늘 섭섭함을 느꼈던 거래처가 내일은 나를 도와주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업체가 배신을 할 경우는 업무적인 손실 이외에 마음의 상처도 큽니다.


제게 가장 상처를 업체는 독일의 업체인데 업체와는 오랜 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웬만하면 저희 제품을 사용해 주고, 저희와 계약성사를 위해 필요하면 약간의 힌트 (예를 들어 가격을 어느 수준으로 조정하면 계약이 가능하겠다는 등)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독일 업체와 저희 회사와의 오랜 우정 때문이었습니다. 오래전 IMF 시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외환고갈로 고전하고 있었는데 이 독일 업체는 그 당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라고 미리 선수금을 송금해 주실 정도로 저희 회사와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연 덕분에 제가 이 독일 업체를 담당하게 된 후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제가 가끔 차를 몰고 방문하면 항상 점심식사에 초대되었는데 독일업체 사장님과 식사 이외에 와인을 각 1병 이상씩 마시는 술판이 벌어지기 일쑤여서 하루 출장이 1박 2일 출장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으며 당시 점심 먹으러 가자는 것은 결국 퇴근을 의미했습니다. 제가 업무 미팅을 할 때나 식사를 할 때에는 사장님 이외에 이 독일 업체 구매 과장도 항상 동행하여 관계를 유지했고 실질적으로 계약을 위한 팁도 이 구매 과장이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연락받았습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습니다. 60대 중반으로서 아직 한창 나이시고, 지병도 없으시고,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도 함께 점심 술판을 벌였던 터라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 옆에서 운전하실 때 숨소리가 거칠었고 술을 드시면 더 거칠게 숨을 쉬셨던 것으로 보아 제가 생각한 것보다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은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렀기 때문에 국화꽃 한 다발을 보내는 것으로 조문을 대신하고 멀리서나마 명복을 빌어 드렸습니다.


이후 이 회사는 덴마크 회사가 합병하였고 새로운 CEO가 선출되었는데 40세가 채 안 되는 젊은 친구였습니다. 전임 사장님이 온 생애 필드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비즈니스를 하고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중/장기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신 반면, 새로운 젊은 사장은 재무 관리자 출신으로 회사의 이익을 제1 가치로 여기고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업무를 밀어붙였습니다. 아마 젊은 나이에 CEO로 선출되었기에 회사에 뭔가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도 작용했을 겁니다. 이 회사는 기존 계약들을 다시 리뷰하고 현 시세보다 높은 가격의 계약이 있으면 이를 파기하고 현 시세에 맞추거나 아니면 다른 업체와 계약을 하려는 등 상도의가 강하다는 독일 업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갑질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이 회사의 구매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구매 과장과의 관계도 전임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우정에 가까왔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중국 업체로부터 더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받았으니 그 중국산 가격 수준으로 기 계약분 가격을 조정해야만 계약을 이행하겠다"라고 사실상 협박을 하더군요.  저는 이미 계약이 완료된 건이므로 조정을 요청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의견을 내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이 가능한지 알아보겠으니 내부적으로 검토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구매 과장은 자기가 오후부터 휴가에 들어가니 그전에 결정해야 하며 아니면 계약을 파기하고 중국산을 구매하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습니다. 어차피 요구하고 있는 가격 수준을 맞출 수도 없고 기분도 너무 나빠 가격 조정 불가 입장을 밝혔더니 그러면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며 전화를 끊더군요. 


이미 계약이 완료된 건이기에 계약 불이행에 대해 고소를 할 수는 있었지만 일단 법정으로 가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리고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아 저희가 승소하더라도 큰 실익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송에 쓸 에너지를 다른 긍정적인 업무에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회사 차원에서 소송은 포기하였습니다.

 

이것으로서 이 회사와의 인연은 끝났고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다른 거래선으로 파트너를 바꾸었습니다. 새로운 CEO와 코드를 맞추어야 했던 구매과장의 입장은 이해가 되었지만 십 년 이상 쌓아온 저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그런 식으로 저를 취급한 것에 대해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아무리 현재 관계가 좋더라도 각자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상대방이 등을 돌릴 수 있으며 과거에는 나름 신의가 있다고 생각한 독일 및 북유럽 국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후배들에게 가르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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