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라는 낯선 감정

일이 나를 설명하지 않을 때

by 디자인거북이

출근은 거의 10시 조금 넘어서, 퇴근은 칼같진 않지만 늦지 않다.

정해진 일을 하고, 적당히 회의하고, 매일 디자인을 한다.


때로는 리딩을하고, 때로는 조율을한다.

누가 봐도 숙련된 디자이너처럼 굴고 있는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모르는 툴과 기술은 금방 익히고, 익숙한 문제들을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가끔 손이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이걸 좋아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그냥 잘 하고 있는걸까?

그 차이를 요즘 자주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이라 시작했지만, 이제는 [잘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있다.

그건 그리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충만한 느낌이 들지도 않는다.

열심히는 하지만 몰입하진 않고, 매일 같은 자리인데 이상하게 그 어딘가에도 닿지 않은 기분이 든다.


예전엔 어떤 일 앞에서도 [이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먼저였는데, 이제는 [이건 무리가 없겠다]다 먼저 나온다.

도전을 즐기던 사람이 '무리 없는 걸' 택할 때의 감정은 낯설지도 모르겠다.


체력도 변했다.

밤새는 야근은 피하고 싶고, 퇴근 후에 오는 조용한 시간과 공간을 먼저 생각한다.

성장보다 회복이 먼저인 나날들이 이어진다.

그런 내가 이상한건지, 자연스러운건지 잘 모르겠다.


회사 생활은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무난하게 흐른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무난하다는 것이다.

의미는 점점 흐릿해지고, 일이 나를 설명할 수 없는 지점에 들어선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지금 이 마음과 생각을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어서이다.

큰 깨달음이나 멋진 전환점 같은 건 없다.

다만 이런 감정도 나의 일부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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