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뒤에 찾아오는 공백에 대하여

프로젝트가 나를 놓아준 뒤

by 디자인거북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안도감이 먼저 와야 한다고들 한다. 마감은 지나갔고, 결과는 세상에 나왔고, 더 이상 쫓길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프로젝트들은 끝난 뒤에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아무 일도 없는데 기운이 없다. 해야 할 일은 줄었는데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괜히 멍해진 채로 시간을 흘려보낸다. 이런 상태를 흔히 '번아웃'이라 부르지만, 모든 공백이 소진만은 아니다.


프로젝트에 진심이었던 사람일수록 끝난 뒤에 쉽게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문제를 붙잡고, 맥락을 이해하고,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자신을 그 안에 넣어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끝난다는 건, 일 하나가 끝나는 게 아니다. 잠시 그 안에 들어가 살았던 나를 다시 꺼내오는 일에 가깝다. 그런데 그 회수 작업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끝났는데도 머리가 멈추지 않는 건 아직 책임감이 남아 있어서다. 허무한 기분이 드는 건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증거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지금의 상태는 망가진 게 아니라, 너무 깊이 들어갔다가 이제 막 나오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힘들지?"
"이 정도로 흔들릴 일인가?"


그리고 조용히 자책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의 우울감은 게으름도, 약함도 아니다. 그건 오히려 일을 대충 넘기지 않았다는 표시이고, 자기 기준을 가지고 끝까지 가보았다는 흔적에 가깝다.


문제는 이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오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목표를 급하게 찾기보다 끝난 일을 제대로 닫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무엇이 아쉬웠는지, 무엇만큼을 쏟아냈는지. 정리되지 않은 프로젝트는 끝난 뒤에도 마음을 계속 점유한다.


혹시 지금 끝났는데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우울해지는 건, 당신이 일을 대충 해서가 아니라 너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이 공백은 실패가 아니다. 퇴보도 아니다. 그저 진심의 뒤편일 뿐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용히 옆에 앉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
말없이도 "이 상태가 이상한 건 아니다"라고, 같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정도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행복한 쿼카씨와 여린 마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