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디자이너에서 간호조무사가 되기까지
겁이 많은 편이다.
새로운 도전을 앞서 늘 겁을 먹는 편이라 어떤 분야든 어설픈 지식 또한 두려움이 한몫을 하는 편이다.
나는 20대에 미대를 입학했다. 전공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고
미술을 전공하는 건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의 형편이 미대를 갈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는 철없이 고집부렸고
고3때 시작한 미대준비를 재수까지 강행하며 미대에 입학을 해버렸다.
막상 입학 이후 공부하는 과정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끝까지 졸업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에 출판사 미술팀에 입사해 20대부터 마흔 살까지 열심히 일했다.
나름 보람도 느끼며 재미있게 직장 생활을 했던 것 같다.
40살 되던 무렵 프리랜서로 7년 동안 일도 열심히 찾아 했고 큰 돈벌이는 아니지만
근근이 버틸 만큼의 수익이 생겼었다.
누구나 이쯤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언제까지 일 할 수 있을까?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그 고민을 나는 계속했던 것 같다.
점점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즐거움보다는 허리통증과 거북목 증상으로 통증에 시달렸다.
1년을 허리통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며 이제 의자병에 걸린 척추를 더 이상 희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40대 후반의 여자에게 다른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건 그리 녹록지 않았다.
어느 날 자격증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주변에 간호학원을 발견하고 간호조무사 국비지원으로 학원등록을 했다.
보건분야로는 지인이 없고 인맥도 없는 낯선 분야였다.
꼬박 1년의 시간을 투자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수료하고 학원 강의와 병원실습을 했는데
실습이라는 노동은 창살 없는 감옥 같은 곳이었으니 사무직에 근무했던 사람은 아마도 포기할만한 과정이라고 생각될 만큼 일은 단순하고 동료들은 차가웠다.
돌이켜보면 나는 뭔가 배우거나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그때부터 힘들어하는 것 같다.
병원 실습은 단순 노동으로 급여 없이 5개월의 시간을 치러야 하는 과정이었으니 견디기 쉽지 않았다.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자격증 공부를 했다. 견뎌낸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인내력이 조무사 과정 중에 1번이라고 생각이 될 만큼 시간은 천천히 느리게 가고 있었다.
자격증 이수 후에 학원원장님의 추천으로 처음 입사한 곳은 치과였다.
입사 후 1년은 이 직업이 신기하기만 하고 낯설어서 현실감이 오지 않았다.
몇 년 만에 느껴보는 근로자의 삶이 재밌기도 했고 그렇게 치과조무사로 근무한 지 4년 차다.
다행히 생각보다 치과일이 나는 재미있다. 조금씩 무언가 배워나가는 느낌도 좋고 지루하지가 않다.
그래서 고된 조무사 신입시절을 잘 견딜 수 있었던 힘이 되었던 게 아닐까.
그 분야에 지식이 너무 없을 땐 그냥 도전하는 용기가 생겨버린다.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무모한 도전은 좀 더 신중했을 것 같다.
그렇게 겁 많은 마흔 후반의 여성이 직업을 바꿔버릴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난 미대 나온 간호조무사 샘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