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그놈의 명절이다

by neveres

‘며느라기’ 웹툰과 드라마 짤이 sns를 도배하고 인터넷 게시판 마다 ‘시’짜 들과 ‘남의 편’의 악행(?)과 그에 대한 분노와 욕설,비난이 넘쳐나는 명절이 돌아왔다. 차례를 지내면 지내는 대로 안지내면 안 지내는 대로 불쾌한 일들은 넘쳐나고 에피소드도 무궁무진하다. 하다하다 이제 남의 집 일까지 찾아보며 분노를 양산하고 증폭시키고 공분의 장을 여는 시대가 왔다.

남편이 근래 들어 종종 “요즘은 여자들 범죄가 더 무섭다. 니코틴 먹여 죽이고, 물에서 밀어 죽이고, 토막내 죽이고, 병으로 내리쳐 죽이고...”라길래 “그러게 명절이나 제사때도 계속 집집이 이런식이면 이제 언제고 한번 탕국에 독타지 싶다.” 했더니 남편은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진심이다. 계속 이런 식이면......

나는 지금껏 시집에서 그렇게 임팩트 있는 사건을 겪은 건 없다. 시집 식구들은 시부모님, 시누, 시외가,친가 할 것 없이 누가 봐도 선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에게 모진말 자체를 해 본적도 할 일도 없는 사람들, 본인들에게 악의가 손톱만큼도 없어서 누가 내게 악의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하고 사는 듯한 사람들. 내 시집이 그런 사람들이다. 내 남편도....

그런 내게도 결혼생활 십여년간 속에 박혀있는 가시 같은 말 몇 마디, 잊지 못할 일들이 몇 개쯤은 있다.

내 시어머니도 결혼 초 몇 년간 명절 당일에 전날와서 하루 자고 아침에 예배드리고 나면 본인 친정에 가자고 하셨다. 어느해인가 “내가 언젠가부터 명절 당일에 내 친정이 아니라 어머님 친정에 가고 있더라”고 한 후에 신랑이 또 외가로 가자는 어머님에게 “그럼 나는 처가에 언제 가라고!”하면서 성질을 버럭 냈을 때 어머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본인 두손을 만지작 거리시며 무안해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시외삼촌 댁과 같이 음식을 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요즘은 남자들도 처가에서 설거지도 하고 주방일을 거든다고 하자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처가집 가서는 아무것도 안해도돼.”라고 말하셨을 때 나는 어머님 친정 동생네 주방에 주저앉아 전을 부치고 있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코메디가 따로 없다.

내 시누는 말에 필터가 없어서 결혼 전부터 이 새는 바가지에 대한 어머님의 양해(?)를 구하는 말씀이 꽤 구구절절했는데 만나 보니 까닭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아버님 생신에 킹크랩이랑 도미회까지 해서 20여만원 어치를 포장해 갔는데 마침 어머님이 금식(양가 모두 기독교여서 나도 이 상황은 이해를 한다.) 중이셨다. 나름 없는 살림에 큰 마음먹고 사간건데 어머님이 못드셔서 미리 말씀을 하시면 날짜를 당겨서 올껄하고 생각은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상을 차리고 먹었다. 어머님은 평소에도 식사중에 주방을 오가시며 부지런히 뭘 가져오시고 차리고 치우셔서 내 남편이 질색을 하며 제발 앉으시라고 해도 가만히를 못계시는 분이다. 그날도 본인은 잡숫지도 못하면서 종종 걸음을 치시는데 거의 다 먹고 치우는 중에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치우지 않는다고 여겼던 시누는 기어코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네.”라고 말을 내뱉었다. 어머님이 저지를 하셨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정말 이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사토라레랑 같이 있는 기분이란 생각을 했다.

적다보니 시아버님과는 비슷한 일이나 마음이 불편해지는 말씀을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좋은 추억은 몇가지 있다. 어머님이 내 친정에 양해를 구하시고(시외할머니가 연세가 높으시고 몸이 편치 않아 얼마 더 사실지.....뭐 이런 이야기 였던듯하다.) 명절을 통으로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시외가에서 보냈던 명절에 시골집 부엌에서 설거지 하는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너는 O씨 집 며느리지 O씨집 며느리가 아니니 여기서 설거지 안해도된다.”고 하셨는데 시외숙모 중 한분이 “고모부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운하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아버님은 시외가집 평상에 앉아서 내게 묵묵히 고동을 까주셨다. 내가 먹는 속도가 빨라서 아버님 손이 점점 빨라 지셨는데 그 기억이 지금도 가끔 떠오르면 감사하다.

시어머님이 친정 동생 집으로 명절 당일에 우리를 데리고 가시려고 하셨을 때 내 집안을 무시해서 “처갓집은 나중에 가던가 미리 좀 다려와라.” 따위의 드라마 속 시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하신 일이 아니신걸 안다. 이건 그때도 알았고 지금은 더더욱이나 잘 알고 있다. 어머님에게 친정 식구들은 그렇게나 애틋한 존재니까. 친정 식구들에 남편,아들,딸,며느리까지 그렇게 다 같이 있는게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식구’였고 ‘다같이’였던 거란걸....

시어머님이 아들이 처가에 가서 일하는 건 생각조차 못하시는 것도 자기 친정 동생네 주방에서 전부치는 내 앞에서 그런말을 주어삼키시는게 악의가 없었던 것도 다 안다. 또 원가정에서도 주방일을 안한 아들이 처가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면 눈물 나실 일이었을테니....나도 요즘(?) 사람은 아니어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 명절 이후로도 십년을 넘게 더 사신(이건 감사한 일이다.) 그 시외할머니와 명절을 보내려고 정작 결혼 후 두 번째인가 명절에 사위라는 게 코빼기도 안비치는 걸 넘어서서 자기 자식도 못보게 되버린 내 부모를 생각하면 시외숙모가 왜 저 말에 우리 아버님에게 서운한지 어이가 없지만 그도 뭐 이해 할 수 있다. 훗날 그 외숙모도 며느리를 보셨는데 내가 아는 한은 그집 며느리는 당일에 시댁에 오지 않는다.세상일 참 알 수 없다.

미혼인 내 시누에게 가족이란 그야말로 부모님이 거의 전부다. 내 남편이 살갑게 부모,형제를 챙기는 위인(?)도 아니고 늘 시부모님께 마음쓰고 물질쓰는 시누 입장에서 새사람이 들어와서 가지는 식사자리에서 금식중인 엄마가 빈 속으로 일하는 모습에 속이 상해 한말이란 걸 지금은 안다. 그게 그 사람입장이고 나는 내입장에 충실하면 그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고 어찌보면 내 입장이 나쁘지 않으니 들어 넘기고 봐 넘길 일들도 십수년이 지나도 가시가 돼서 박혀있는 걸 보면 시집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이야기들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고 싶어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