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꾸미 200마리

by neveres

시어머님과 두 번 정도 자리를 한 후였던 것 같다. 어머님께서 내일 병원에 가려고 그 당시엔 남자친구였던 내 남편의 외할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와 계신데 집에 와서 한번 뵙고 가주면 고맙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별 망설임 없이 가 뵙겠다고 했다. 그날은 마침 금요일 이었고 남자 친구의 집은 근무하던 은행 지점이 있던 동네 였다. 정작 남자친구는 늘 일에 쫓기는 처지여서 혼자 갔지만 거기도 별 저항감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몇해전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떠올랐을뿐...... 남자친구를 보여주면 좋아하셨을텐데......그런 생각에 가뵙겠다고 했던 거였다. 어머님께 친정엄마가 애절하듯 내게도 어린시절 주양육자였던 외할머니는 부모보다 큰 존재였다. 그냥 만나고 싶었다.....남자친구의 외할머니가.....

아직도 그 빌라 반지하에(어머님이 집관리를 잘하셔서인지 반지하라는 생각이 들지않았던)있던 집 안방에서 내복에 목걸이(할머니들 국룰인 듯)를 하고 계신 외할머니께 절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절을 받으신 외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나를 끌어당겨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씀만 연신 하셨다. 주어가 없는 그 고맙다.....에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의미를 그때도 나는 어렴풋이 이해했었던 것 같다. 거창할 것 없이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을 받고 급속냉동했다는 쭈꾸미 200마리를 얻어들고 집에 오던 버스안에서 가만히 밤거리를 보던 것도 가끔 기억이 난다.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가 결혼을 해야하는 거지 날도 안잡았는데 왜 그집에 가서 외할머니한테까지 선을 뵈었냐고 지청구를 듣고 쭈꾸미를 데쳐먹었다. 엄마랑 같이.... 따지는게 오죽이도 많은 집안이라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나도 가리고 따지는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평소라면 안했을 일이다.

그 후로 십여년이 흘러 시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몇해전인가 노인성 치매가 오셔서 사람을 잘 못알아보셨는데 남편의 시외사촌 결혼식 날 요양병원에서 잠시 외출 나와 시외삼촌 댁에서 자손들과 시간을 보내셨는데 별생각없이 모두 내가 누구냐 얘가 누구냐 알아보시겠냐를 시전하던 중 시어머니와 나만(왜인지 나를) 알아보셔서 어머님이 우시고 나도 뭔가 모르게 찡했던 기억이 난다. 시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내 집 식탁에 앉아서 책을 보던 내가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말을 하던 중에 남편에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마침 은행을 그만 두고 남은 휴가를 쓰던 중이어서 시외할머니 빈소를 상복을 입고 삼일을 지켰다.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중에도 날 기억했던 그 할머니, 처음만난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던 그 할머니를....그리고 나를 붙잡고 우시던 어머님을 거기 두고 올 수가 없어서..... 시외할머니 장례에 가야하냐 말아야하냐를 인터넷 게시판에 묻는(가기 싫어서들 그러는 거겠지만) 세상에 삼일을 거기 있었다니 주변에서는 얼굴을 찌푸리는 지인들도 많았었다. 하지만 후회되지 않는다. 좋은 기억으로 끝맺음을 하기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냥 언젠가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좋거나 그렇지 못한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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