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 줄래

by neveres

남자친구와 함께 만나 인사를 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은 남자친구 없이 단둘이 만나서 할 말이 있다고 연락을 해오셨다. 그것도 은행 앞으로 찾아오시겠다고....


그날 마감을 좀 서둘러하면서 남자친구 어머님이 은행 지점 앞으로 찾아오시기로 했다고 무심코 이야기했을 때 여직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왜 찾아오신다는 거냐?”, “왜 남자친구 없이 둘이 만 만나자는 거냐?”…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결론은 은행 앞까지 오시는 건 좀 그렇지 않냐는 이야기였다.


앞서 ‘바야흐로 그놈의 명절이다’라는 글에서 말했듯이 내 시집 식구들은 본인들이 악의가 없어서 본인들의 말이나 행동이 악의로 해석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아들 없는 자리에서 무슨 못할 말을 하려고 그러냐는 둥 은행원이라고 했더니 마음에 들어 하는 거 아니냐는 둥... 이런 심술궂은 예측은 전혀 생각지 못하셨을 것이다.


어머님과 은행 근처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3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날 나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했다. 남자친구에게 너랑 결혼하는 데 어머님이 80%는 작용하셨다고 농담할 정도로 이날 어머님과의 대화는 결혼을 결심하는데 크게 작용했다.


어머님이 날 찾아오신 까닭은 내가 교회 다니는 것도 인상도 다 마음에 들어서 당신 아드님과 결혼하면 참 좋겠다며 내 의견을 묻기 위해 오신 거였다.


그렇게 나는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의 어머님께 프러포즈를 받았다. 결혼할 당시 혼이 나갈 만큼 바빴던 남편에게 언감생심 프러포즈는 기대도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프러포즈를 받긴 받은 셈이다. 어머님은 “내 아들과 결혼해 줄래.”를 하러 오신 거였다.


그날 어머님은 남자친구의 친가와 외가 내력부터 해서 가족들의 면면과 이 결혼의 ‘장점’과 약간의 양해가 필요한 부분(물질과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밥상 앞에서 국이 짜다, 싱겁다 한마디 안 하시던 어머님의 시아버님, 그 무던하고 착하셨다는 내 시조부님의 이야기, 방앗간 집 셋째 딸로 태어나셨던 곱고 솜씨 좋으셨다는 어머님의 시어머님, 내 시조모님, 평생 한 교회를 섬기셨던 권사님이셨고 한없이 자상하셨다던 그분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런 시부모님 덕분에 어머님은 그 시절에도 시집살이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남자친구의 친가는 이북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전쟁 때 배 두척에 온 일가친척이 남으로 내려왔고 덕분에 이산가족이 없다고 했다. 다만 공산주의를 피해 내려온 남한에서 그들은 가지고 내려온 재산의 대부분을 빼앗겼다고 한다. 공산주의고 민주주의고 북이고 남이고 엄혹한 시절이었다고 할밖에.


이 착하디 착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는 언제고 다시 해보기로 하자.


남도의 끝자락에서 어렵게 자란 어머님은 7남매의 장녀라고 하셨다.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어머님은 국민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셨다고 그게 참 아쉽다고 하시면서도 친정이야기를 하실 때 행복해 보이셨다. 그 7남매 중 두 분의 목사님과 두 분의 장로님, 한 분의 전도사님(우리 어머님)이 나왔다.(지금은 목회자와 직분자가 좀 더 늘었다.)


시외가에 대한 이야기도 후에 다시 해보는 것으로 하겠다.


어머님의 남편, 나의 시아버님은 당신 아버님을 닮아서 역시나 쓰다 달다 말씀이 없이 무던하시다고 했다. 남한테 싫은 소리를 못하시는 성격 탓에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하신 부분은 있지만 빚에 몰려 피신하셨던 아버님이 병을 얻고 돌아오셨을 때 어머님은 그저 등을 떠밀어 집으로 가자고 하셨단다. 평생을 어머님 밖에 모르고 사셨다고 다른 건 몰라도 남자친구가 아버지를 닮아서 아내한테 잘할 것이라고 하셨다. 어머님을 오랜 시간 버티게 해 준 것이 그 애정에 대한 신뢰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드님에 대한 깨알 자랑과 조금 흠이 되는 듯 한 면에 대한 실드도 빼놓지 않으셨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착했다고(16년 베프 입장에서 본다면. 고등학교 때도 성깔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군대 다녀온 후에도 현재까지 비교적..... 아니 나보단.... 착하다.) 사회생활 하면서 애가 좀 거칠어지고 신앙생활도 다소 좀 소홀해지긴 했지만 어릴 때 믿음 생활 열심히 했던 바탕이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막에 혼자 버려져도 전갈을 잡아올 애라고 하셨다.


이 집안의 새는 바가지 노필터 우리 시누에 대해서 말은 좀 ‘그렇게’ 해도(이때는 이 ‘그렇게’가 어떻게 인지 알지 못했다.) 애는 착하다는 다소 “우리 개는 안 물어요” 같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후에 시누를 만나보고 어머님의 우려를 통감하게 된다. 그녀가 착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내세울 것 하나 없지만 힘든 세월 그저 믿음 하나 붙잡고 사셨던 어머님은 ‘신앙’을 강조하셨고 그게 유일한 자랑이신 듯했다.(돈이 많던 적던 이 부분은 모든 믿는 사람들이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날 어머님이 내게 하신 이야기들은 나름 ‘기독교 집안’이라는 캐치 프라이즈를 내건 회심의 ‘아들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셨고 멋지게 성공하셨다.


이날 그 긴 이야기 속에 남자친구의 집안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내 앞에 이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내가 평생 보아온 그 ‘집사님’ 권사님‘들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다. 교양 있는 척, 믿음 있는 척, 인자한 척... 그놈의 ’척‘하는 사람도 아니고 아주 드물게 신앙과 인격이 함께 가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날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거면 됐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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