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그 돈 천만 원

by neveres

내가 은행을 준정년 퇴직으로 나오면서 이른바 명퇴금을 포함한 퇴직금이 수억 원이었다. 퇴직금에 대한 십일조를 이야기했을 때 남편도 친정엄마도 썩 달가운 눈치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십일조에 성공(?)했고 이건 후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여튼, 안해도 그만이었을 그 돈, 천만원이야기를 우리가 단둘이 만난 그날 어머님은 내게 애써 털어 놓으셨다.


어머님의 동생, 남자친구의 외삼촌은 기술을 배워서 일 하시다가 목사님이 되신 분이다. 여기는 어머님의 바램과 기도가 크게 한몫했고 가슴 벅찬 일이셨던 것 같다. 그리고 외삼촌은 교회를 개척하게 되셨다.


많은 경우 동네 작은 개척 교회는 ‘맨땅에 헤딩’이라고 보면 된다. 교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이야기를 배제하고 본다면 개척은 일종의 개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내가 어디 가게를 낸다……그럼 뭐가 필요하겠는가….. 돈이다!


여기저기 알아봐도 돈 나올 구멍이 없었던 그때, 어머님은 아들이 잠 못 자 가며 번 돈이 모여 천만 원이 통장에 있다는 걸 알게 되셨다. 어머님은 조심스럽게 외삼촌이 개척하는데 그 돈을 좀 빌려줄 수 없겠냐고 하셨고 아들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아니 빌려주는 게 아니라 헌금하겠다고 했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돈을 모으려고 했다기보다 워낙 잠잘 시간도 없는 일이라(남편은 PD다)쓸 시간이 없어 통장에 그대로 쌓였던 돈이었고 당장 결혼 생각이 없던 때라 줘도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빌려주면 그걸 누가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교회가 부흥한다 해도 차용증도 없이 조카에게 받은 돈 천만 원을 당회에 뭐라고 달라고 한단 말인가. 빌려준 돈이 되어 버리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어머님의 마음의 빚이 될 것이고 고통받는 건 자기 어머니라는 알았기 때문에 그는 그 돈을 ‘헌금’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을 결혼시켜야 할 상황이 닥쳤다. 혹시 모아놓은 돈이 없냐고 여자친구가 물어보면 물색없이 툭하고 외삼촌 줘버렸다고 할 걱정도 하셨을 게다. 그래서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아들 입단속 대신 사실을 ‘좋게’, ‘잘’ 말해보기로 하셨던 것이다.


아들이 월급 받은 걸 다 써버리는 불성실한 사람은 아니라고 그리고 그 돈이 쓰인 곳이 교회 개척이었다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시어머니 자리가 친정 동생한테 당신 아들 전재산을 갖다 준 게 될 수도 있는 그 이야기를 힘겹게 하셔야 했던 어머님….(결국 결혼 준비 과정에서 어머님은 이 금액의 돈을 마련해 내게 주시게 된다.)


적다면 적고 크면다면 큰돈 천만 원, 하지만 결혼하는데 결정적이진 않을 돈 천만 원…. 대세에 무슨 지장이 있으랴. 나도 이 통 큰 ‘헌금 스토리’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갑자기 있는 믿음 없는 믿음을 끌어 모아 어머님을 안심시켜 드렸다.


쉽지 않으셨을텐데 속일 수도 있었을텐데 어머님은 쉬운길이 아닌 정직을 택하셨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가 그냥 웃으면서 “너도 그러게 십일조 잘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넘어갔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친정 부모님에게도 그때 이걸 이해할 만한 신앙심은 없었다. 다만, 본인도 폭싹 망해 가진것 없이 자식 결혼 시키는 입장에서 돈 때문에 수모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드리기 싫었을 것이다.


그렇게 남자친구는 자기가 다니지도 않을 교회에 가진 돈 전부를 ‘헌금’한 엄청난 ‘믿음의 자녀’가 되었다.


세상에는 사실보다 중요한 진실이 존재한다. 어떤 이야기는 그저 그대로 두어도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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