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등록해서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기 전에 일 년 조금 못되게 부모님 교회에 같이 출석을 했었다. 내가 은행에 근무하는 걸 아시는 그 교회 목사님이 나에게 헌금 계수를 부탁하셨고 자연스럽게 나와 남편이 그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이다.
결혼하기 한참 전에 한두 번 그 교회에 갔을 때 좀 불편한 기억이 있었다. 청년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한번 참석했다가 그 알량한 은행원 타이틀도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싶게 자기소개들이 거창해서 여기는 교회가 아니구나 싶어 발길을 끊었던 것이다.
몇 년이 흘러 원로 목사님이 물러나시고 새 담임목사님이 부임하신 후에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고 헌금 계수를 부탁받은 데는 하나님이 뜻하신 바가 있겠지 싶었다.
내가 그 교회를 불편해했던 이유는 넘쳐나는 고급스러움(?) 때문이었다. 아무나 들어와서 마음껏 울고 기도할 수 없는 교회. 배운 사람,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 모두 너무 차려입고 사교적이며 교양 있는 사람들만 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도리어 나는 불편했다. 우리 주님도 이 교회에 오시면 수준(?) 안 맞아서 어울리지 못하실 판이었다.
이 교회는 매주 예배 때마다 외국에서 누가 다니러 와서 예배를 드리면 거창하게 소개를 했다. 무슨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누구누구도 아니고….. 굳이 누구 네 집 자녀 누구누구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왔다고 일어나서 멋지게 인사를 하고 모두 손뼉 치는 모습이 정말 견딜 수 없이 불편했다. 박수받아야 할 찬양과 경배받으실 우리 예수님은 이 교회에 초라한 행색이셔서 못 오실 것 같았다.
성가대는 또 어찌나 차려입고 반주자들은 또 얼마나 거창한지 그리고 그 반주자들에게 재정에서 상당 부분이 사례로 집행되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우리 주님은 차라리 투박하고 진실한 이들의 찬양을 더 반기실 터였다. 그럴 재정이 있다면 선교나 구제에 쓰는 것이 맞질 않은가.
이 교회에서 헌금 계수 섬김을 하던 중에 나는 주님이 나를 이곳에 부르신 뜻을 알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계수 섬김 하는 교인들은 모두 중년의 남자분들이셨고 그중 한 집사님이 유독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유별나셨는데 그분 이야기에 따르면 이전에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걷히고 계수 섬김 하는 사람들이 회식(?)도 했었다고 했다. 지금 헌금도 많이 줄어들고 교회 분위기도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다. 목사님이 바뀌었기 때문이란다.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님은 이 동네 사교클럽 같은 교회를 주님의 교회, 기도와 말씀으로 거듭나는 교인들로 인도하고 싶어 하셨다. 수요예배, 금요철야 예배를 드리고 교회 재정에서 선교 예산을 늘리고자 하셨다. 그러자 교인들 중 많은 이들이 반발했다. 실제로 재정에 대한 논의 중에 선교에 300만 원을 더 쓰면 좋겠다는 담임 목사님께 “그럴 돈이 어디 있냐!?”라고 언성을 높이던 장로도 보았다. 예술의 전당에 공연장을 대관해서 음악회를 하는 교회에서 선교에 쓸 재정은 ‘그럴 돈’이라니. 주여…..
나는 그 와중에 갑자기 이 교회에서 매주 헌금 계수를 하게 된 것이다.
이 교회가 동네에 작은 교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한주에 들어오는 헌금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데 선교나 구제에 재정을 쓰자고 하니 크게 반발하고 나선 교인들이 헌금이 적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엔가 선심 쓰듯 계수 전 기도를 내게 해보라는 이야기에 나는 서슴없이 “물질의 많고 적음을 판단하지 않고 이 물질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되어 주님 일에 크게 쓰일 수 있게 해 주시길” 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계수실에서 다시는 그 누구도 헌금의 많고 적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주 후, 교인들의 분열이 극에 달하자 새로 부임하셨던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사임의사를 밝히셨다. 그날 나와 남편은 그 교회를 떠나기로 했다. 계수 위원 중 그 유난했던 남자 집사님이 교회 문밖까지 쫓아 나와서 “이런(?) 가정은 계속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더 정이 떨어졌던 기억이 난다. ‘이런’이란 말 안에 연로하신 부모님도 대학 공부를 하신, 직업이 안정적인 가정이란 뜻이란 걸 알기에 환멸을 느꼈다.
교회는 배운 자, 가진 자, 교양 있는 사람들의 사교클럽이 아니다. 이 교회는 심지어 새 신자도 반기지 않았다. 그렇게 부침을 겪다가 이제 몇십 명만 남아 예배를 드린다는 이 교회에 그 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나는 목수이신 예수님, 어부 베드로가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교회에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