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과 김치통

by neveres

갑작스레 상가에 조문할 일이 있어 다녀오니 저장해 놓고 미발행한 이 글이 문득 생각나 올려봅니다.



시외할머님은 내가 은행을 퇴사하고 한 달도 채 안되어서 돌아가셨다.


남편과 나는 토요일 저녁에 연락을 받고 주일에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는 조문을 간 것인데 어째서인지 상복을 입고 그 빈소에 삼일을 앉아있었다. 운전을 못하니 차를 끌고 갈 수도 없었고 상을 당한 사람들에게 나는 이만 가겠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또 어느 만큼은 결혼 전에 뵈었던 시외할머님을 애도하는 마음과 엄마를 잃은 어머님에 대한 애잔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있다 보니 여기 내가 온 이유는 어머님 때문인데 어쩐지 어머님은 물론이고 같이 오셔야 할 목사님(시외삼촌) 가족이 보이질 않았다. 상이 났어도 작은 개척교회에 따로 세울 부목사가 있는 게 아니어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와야 해서 늦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시외가는 유난히 똘똘 뭉쳐 우애가 좋은 편인데 유독 둘째 외삼촌댁만은 형제들과 약간 온도차가 있어 보였다. 가장 큰 이유는 둘째 외삼촌을 제외한 그 집 식구들(외숙모와 아들, 딸)이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였고 어머님 피셜에 의하면 둘째 외숙모가 형제 중에 가장 형편이 나음에도 불구하고 베풀고 나누는데 인색해서라고 했다.



하필 초상 치른 첫날이 주일이라 교인인 가족들의 도착이 늦어지자 일찍 와서 이것저것 처리할 일을 도맡은 둘째 외삼촌 식구들의 불만이 스물스물 올라와 급기야 죄 없는 나에게 미쳤다.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반에 선의가 반이었는데 큰 소리 칠 입장이 아닌 최약체로 보였던 것인지 가만히 있는 나를 붙들고 둘째 외숙모가 말실수를 시작하셨다.


이 장례에 제일 돈을 많이 쓰고 손님도 제일 많은 게 본인들인데 누구들은 늑장을 부리고 늦게 오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살짝 웃음까지 보이며 “내가 이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라며 핸드폰에서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자기 며느리는 임신 중이라서 여기 안 온 것이라고 했다. 하. 하. 하. 하. 정말 대환장 파티다.


이 말을 해도 될지 모른다며 배려하는 척하면서도 웃음을 흘린 건 나에게 아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선택적으로 딩크인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해서라고 멋대로 생각을 해서 며느리 임신 유세를 떠 신 것이다. 무려 자기 시어머니 상에 시누 아들의 아내인 내가, 조문만 하고 가도 그만인 내가, 상복까지 떨쳐 입고 앉아있는데 정작 그 집의 유일한(그 당시에는) 손주 며느리인 그녀의 며느리는 임신을 하신 탓에 안 오신다는 말을 당당하게 한 것이다. 가족들 안 듣게 구석에서 나에게만.


기독교 집안이라면서 임신과 장례가 무슨 상관인가. 돌아가신 시외할머니가 당신 친손자에게 귀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허긴 이 분은 교인이 아니니 가리는 게 있을 수는 있다.

평소에도 당신 시집에 본인 남편만 주구장창 돈을 퍼주는 것 같아서 안 그래도 불만이 많았을 텐데 돈은 돈대로 쓰고 자신이 교회에 안 다닌 다는 이유로 도무지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모두에게 특히나 시누인 우리 어머님에게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분풀이 대상이 시누도 아니고 시누 며느리인 나라니.


나는 시외숙모가 교회를 가든 말든 시집에 돈을 더 쓰든 말든 아무 불만이 없다. 아니 내 알바가 아니다. 게다가 내가 만약 불임이나 난임이었다면 초상집이고 뭐고 정말 뒤집어 엎을 판이었다.


그도 아니면 깔깔 웃으면서 “그러게요 그런데 저는 여기 왜 있을까요?”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는 시어머니 상중이지 않은가. 상심이 너무 커서 헛소리를 하나보다 하는 수밖에.

아무래도 교회 다니는 식구들끼리 더 잘 모이고 더 가까운 것은 사실이니 가족 중에 자의 반 타의 반 돌려세워진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은 외로우면 어긋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둘째 외삼촌이 나서서 남편에게 유골함을 투명한 통에 넣어서 시골 내려가 그 통을 놓고 뭔가를 하고 싶다고 투명하고 밀폐가 되는 김치통(?)을 사 와야 한다고 하셨다. 장례식장에 김치통 이라니. 그런 게 필요하면 급사를 하신 것도 아니고 미리 준비를 해놓으실 일이지. 초상 치르는 날 갑자기 김치통을 찾으시다니. 어찌 된 일인지 그걸 구해오겠다고 나선건 내 남편이었다. 시외가에 그 많은 외사촌동생들이 아니라.



혼자 장례식장에 시외가 식구들 사이에서 잔뜩 뻘쭘했던 객식구인 나는 남편의 ‘김치통 원정’에 동참했고 우리는 그날 그 지역의 모든 마트를 다 뒤졌다. 지금은 결국 그걸 샀었는지도 기억도 안 나지만 김치통이란 통은 다 찾아보고 하다 하다 그냥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무슨 수조에 아크릴 상자까지 다 수배해 본 기억이 난다.


점심 전에 나가서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장례식 장으로 돌아온 우리 ‘김치통 원정대’를 반겨 준건 아버님이셨다. 아버님은 그 시간까지 점심도 안 드시고 우리를 기다리셨다. 아버님도 나처럼 그 장례식장에서 객식구였다. 아들 며느리가 없이 처갓집 식구들과 식사하기가 명절에 처남 집에서 밥 먹는 것만큼 불편하셨을 테고 어머님께 친정식구들과 친정엄마 장례식장을 챙기는 일이 우선이셨을 것이다.


우리는 아버님을 모시고 때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 우리 앞에 시이모와 시누가 와서 앉았다. 아..... 이 환장의 짝꿍....


남편은 외할머니 돌아가신 슬픔과 추위, 끼니도 거른 채 수도 없이 차를 댔다 뺐다를 반복하고 몇 시간을 떨고 다닌 탓에 손을 떨며 밥을 먹고 있었다. 그걸 본 시이모가 그날 도 여지없이 입방정을 떨었다.


시이모는 흘낏 아버님이 자리를 비우신 걸 확인하더니 남편에게 “야! 너도 술 좀 적당히 마셔”라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야.


젊은 시절 약주를 많이 하셨던 아버님은 한차례 몸이 많이 아프신 후로 지금은 어머님의 감시 하에 거의 약주를 안 드신다. 한때 아버님이 술 좀 드셨다는 걸 시이모가 꼬집어서 내 남편에게 너도 술 좀 작작 마시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내 앞에서 내 시아버지와 내 남편을 싸잡아 알코올홀릭 취급이라니.


남편은 술을 마셔도 과하게 먹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술이라면 시외가도 다들 예수 믿기 전에는 한 술들 하셨다던데 이게 무슨 망발인가. 자기 엄마 장례식장에서 고생한 조카에게. 그것도 조카며느리 앞에서.


남편은 그날 정신이 없어서 잘 못 들었다 하고 시누는 들었어도 그게 잘못된 일인지 구분이 안 갈 사람이므로 분노는 오로지 내 몫이었다.


할 말이 없으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될 텐데 기어코 입을 열어서 사단을 내고야 마는 신기한 이 사람은 이혼하고 오빠와 올케 언니들 보기가 면구스럽고 싫은 소리가 나올법하니 꼭 언니네 식구들 밥상머리에 앉는 습관이 있었다.


참자.... 참아..... 저 사람은 엄마를 잃었다..... 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마저도 참고 넘어갔다.



그리고 장례 마지막 밤에 휴가를 낼 수 없었던 남편이 내일 출근이라고 하며 집에 가려는데 그만 어머님께 붙잡히고 말았다. 입관하는데 관들 사람이 부족하다며 그것까지 하고 가라고 하셨다. 당신 아들에게 밤새고 새벽에 입관하고 운전해서 출근해 일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잠도 못 자고 바로 운전해서 가야 하니 졸음운전에 그날 피곤해서 일을 어찌하냐는 걱정은 한마디도 없이..... 이 걱정은 왜인지 장모인 우리 엄마의 몫이었다.


김치통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입관할 사람이 없다는 말에 나는 기가 넘어갈 판이었다. 물론 나도 이 상복을 벗고 내 집에서 쉬고 싶었고 우리 엄마라면 다음날 출근할 자식 등 떠밀어서 집에 가서 푹 자고 일하러 가라고 했을 텐데 몇 년을 요양 병원에서 앓다 돌아가신 어머니 장례식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김치통이야 그렇다 치고 입관할 사람이 부족하다니 그 집에 남자가 대체 몇 명인데.......



그날 나는 모두가 ‘남의 편’이라는 남편에게 편이 되어 주기로 각성했다.



남편이 자기 원가정에 무덤덤한 건 그의 타고난 성격 탓이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렇게 시외할머니와의 주꾸미의 추억을 뒤로한 채 충분히 할머니를 추모하고 보내드렸다.


잔치집과 초상집,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싸움이 나는 건 당연지사인 것 같다. 돌아가신 시외할머니는 그 장례식장에서 참 여러 사람을 살리셨다.

작가의 이전글오병이어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