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정액제

by neveres

우선 헌금에 대해, 믿지 않는 이들 혹은 교회에 다니지만 헌금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음 가는데 물질이 따르기 마련이고 각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물질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소유를 명품이나 미식에 사용하는 것이 기쁨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자신의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에 헌금하는 것 자체가 죄악시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많은 교회들에서 헌금으로 드려진 물질을 유용하고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의 주머니를 채운 목사들이 죄인일 따름이다.


누군가 자기가 번돈으로 오픈런해서 돈 몇 천, 몇 백만 원씩 주고 가방을 산다고 ‘골 빈 X’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교회에 십일조를 하고 헌금을 낸다고 ‘광신도’라고 교회를 적당히 다니면 될 일이지 돈까지 갖다 바친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내가 번 돈으로 좋은 물건이나 차를 사야 행복하고 레저나 여행에 사용해야 행복하다. 그게 본인에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모이는 교회를 유지하고 사역자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이웃을 구제하고 선교하는 것에서 만족을 찾고 가치를 느낀다. 그러니 헌금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욕먹을 마음은 없다.


다만 헌금을 강요당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어쩌다 보니 ‘선교부장’이 되었다. 반장, 부반장이야 선거로 뽑는다 쳐도 학급에서 성적으로 줄 세운 대 여섯 명중에 반장, 부반장 뺀 나머지 중에서 학습부장, 독서부장, 체육부장, 미화부장 따위는 대충 걸맞은 아이로 임원회의 같은 걸로 정해버리던 시절, 우리 반에 임원 대상 중에 어쩌다 보니 교회 다니는 아이가 나뿐이었다.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와 달리 학급임원에 선교부장이 있었던 것인데 우리 반에 목사님 자녀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절대 안 하겠다고 하고(후에 PK들이 얼마나 상처가 많고 스트레스가 심한지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목사님 딸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다지 독실하지 않지만 교회를 다니고 부모님이 직분자이기도 하니 얻어걸린….. 떠맡은 것이다. 나는 꼭 독서부장이 하고 싶었건만.


중학교 2학년까지 교목이셨던 선생님(목사님)이 고등학교로 올라가시고 새로 교목이 부임을 했는데 이 분과 내가 충돌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처음은 만우절이었다. 국영수보다는 상대적으로 마음 편한(?) 종교시간을 골라 선교부장인 내가 주도하여 대표기도에 “할렐루야! 주여!” 정도의 오버를 좀 한 것뿐인데 새 교목 선생님은 신성모독이라도 당한 얼굴로 굉장히 불쾌해하며 우리를 책망하였다. 내가 다니던 장로교회에 비해서 활발(?)한 감리교 계통 미션스쿨이었는데 이 사람은 순복음은 가며 기절할 사람이었다. 물론 ‘장난’이 문제였다는 것은 안다. 나는 우리 주님이 이 정도도 이해 못 해주실 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니 이해해 주셨음을 믿는다.


그리고 사건은 부활절에 터졌다. 교목이 헌금을 정액제로 걷으라고 각 학급 선교부장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유는 학생들이 헌금을 성의 없이 10원, 50원 하는 식으로 장난스럽게 하는 것이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미션스쿨이라고는 하나 어차피 지역에서 뺑뺑이 돌려온 아이들이 무슨 마음으로 진심에 우러나와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이 들어 경건하게 정성을 모아 헌금을 한다는 말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삥’이나 다름없는 억지 모금일 따름이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액제 헌금이 납득이 가지 않았고 그래봤자 500원 이상으로 하라는 데 대체 무슨 500원에 존중이 담겨 있다는 말인가. 주님의 부활이 500원어치 영광이란 말인가. 나는 이 지시를 따를 생각이 없었다.


지시를 하달받고 학급에 돌아온 나는 일단 교목이 지시한 내용은 알려주었고 대신 우리 반은 강제하지 않는다 헌금은 정액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만일 할당금액(?)을 채울 것이 강제되면 내가 채우겠다, 믿지 않는 아이들 내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아예 내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반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낼 사람만 내고 싶은 만큼 헌금을 내도록 하자고 했다.


이 일이 알려져 교목실에 불려 가고 나는 처음으로 학교에서 선생님과 반목했다. 크게 훌륭하고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지만 공부도 어느 정도, 행실도 어느 정도, 부모님 관심 적당히, 뭐 그 정도의 상태가 양호한 아이였는데 이때 나에게 무슨 주님의 역사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내가 7살 때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우리 교회 목사님, 전도사님은 헌금은 얼마이상 내야 한다고 하신 적이 없다. 만일 교목 선생님 말씀이 맞다면 나는 우리 교회에 가서 물어보겠다. 성경에도 그런 구절을 본 적이 없다. 예수님은 오히려 과부의 한 달란트를 더 귀하다고 하셨다 어째서 적은 금액이 모욕이라고 하시는가. 믿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그 돈을 내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저 내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학교에서 헌금을 강요당하고 졸업해서 나중에 아이들에게 교회란 기독교란 어떤 이미지가 되겠는가를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잘 강변하였다.


교목은 그저 심플하게 내가 건방지다고 도전적이라고 매도하고 나섰고 결국 고등학교로 올라가신 나와 친했던 이전 교목 선생님이 내려오셔서 어찌 설득하셨는지 다시 불려 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 반은 헌금 정액제를 따르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어쩌면 귀찮아서 그냥 조용히 내가 돈이나 맞춰내놓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냥 아이들에게 우리 주님이 돈이나 밝히는 분이고 신성모독 어쩌고 하는 딱딱한 분으로 소개되는 것이 속이 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 중에 믿지 않던 누군가가 후에라도 기독교가 그리 다 부패한 사람들의 집단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교회에 나가주었다면 그 잠시간의 충돌은 오히려 주님께 감사할 일이다.


어떻게 헌금으로 몇십 원을 성의 없게 바치느냐 이 것은 하나님에 대해 모독이라고 말했던 그분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주님을 500원어치 동냥바치로 만든 것은 당신이다.


우리 학교 교훈이 무려 ‘믿음, 소망, 사랑’이다. 본인의 설교와 교육 어디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메시지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시라. 만우절 장난도 용납 못하고 아이들이 내는 헌금 액수나 세고 있던 본인에게 무슨 사랑이 있었는가.


우리 주님은 아이들이 강제로 헌금한 돈이 아니셔도 이 땅에 모든 것이 그분의 것임을 잊으셨는가. 혹시나 후에라도 부디 회개하셨기를 바란다. 목사면 목사답게 제발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사시라. 16살짜리도 아는 과부와 한 달란트 이야기도 모르시는가.


이 소란을 지나고 나는 중학교 졸업식에서 ‘소녀선교회장상’을 받았다. 이 또한 상에 학생을 끼워 맞추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 주님의 유머로 받아들였다.


우리 주님이 이렇게 위트 있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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