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집사님 내가 어제 집사님에 대한 꿈을 꿨는데~”
주님은 꿈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실제로 음성을 들려주실 수도 있고 환상을 보여주실 수도 있다. 우리 주님은 그 능력이 무한하시고 역사하심에 한계가 없으시다.
그런데 유독, 남의 꿈을 그렇게 잘 꾸는 은사자들이 있다.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왜 ㅇ집사에게 하실 말씀을 우리 주님은 굳이 다른 이의 꿈에 나와서 하셨을까? ㅇ집사랑은 안 친하셔서?
영적인 능력, 은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나 스스로 은사자라고 하는 이들을 모두 믿지는 않는다. 꿈을 통해 주님이 타인에 대한 일을 보여 주셨다면 기도로 중보 해주면 될 일인데 굳이 주님이 나를 통해 당신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 것은 위험하게 여겨질 따름이다.
그것이 진정 주님이 내 꿈에 계시로 보여주신 것인지 내가 주변 누구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가 꾼 꿈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필요치 않은가. 혹시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평소에 생각해 온 바가 꿈에 보여지면 스스로 마음에 합한 일이니 주님이 꿈에 보여 주셨다고 믿고 싶고 정당성을 부여해서 상대방에게 어떠한 행위를 하도록 종용하는 것은 아닌가.
주님의 뜻을 빙자한 나의 뜻을 전한 것은 아닌지 내가 상대방을 가스라이팅 하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단속할 일이다.
나에게 목사님 지인이 있다. 같은 직장 옆자리에서 일하던 언니였는데 느지막이 신대원을 졸업하고 중국선교를 다녀와서는 교회를 개척했다. 언니는 늘 내게 든든한 조력자였고 신실한 신앙의 선배였는데 몇 해 전 조용히 연락을 끊게 되었다.
원래도 자기 고집이 센 사람이긴 했는데 불현듯 나에게 자신이 기도 중에 우리 부부가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이 선교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 때문이라는 사인을 받았다며 당장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큐티 교육을 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큐티 양육과정이 있어서 나는 그 당시 그걸 신청해서 큐티를 시작할 참이었다. 그리고 언니에게 큐티 양육을 받을 참이라고 하면 감사한 일이라고 할 줄 알았다.
이미 하고 있는 큐티 교재가 있는 데 다른 교재를 지정해 주고 눈만 돌리면 사방이 목사인 교회를 다니는데 굳이 큐티 양육을 해주러 인천에서 서울까지 오겠다니, 이 목사님께서 주님이 내게 뜻을 전하는 통로를 본인으로 일원화할 참이라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굳이 큐티 교재도 지정해 주고 큐티 양육과정을 자신이 맡고 그다음 수순은 본인 교회로 옮기라는 이야기가 나올 판이었다.
자.... 이 목사님은 가서 제자 삼으라는 말씀을 누구의 제자 삼으려는 것이었을까. 주님의 제자? 자신의 제자?
선교에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은혜이나 나는 전혀 주님께 선교를 나가라는 사인을 받은 적이 없었다.
물론 타인을 통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보여주는 일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큐티를 안 하겠다, 선교는 절대 나의 일이 아니라고 부정을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나에 대한 주님의 뜻을 전달받았다는 말은 너무 인간적으로 들렸다. 언니가 받았다는 계시가 주님의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니의 뜻임은 확실하다는 느낌이 왔다.
목사 안수받기 한참 전이었지만 동네에 들어선 브랜드 아파트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던 언니의 당찬 고백이 유독 소화가 되지 않았던 그때가 불현듯 떠올라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녀의 믿음은 신앙심이 일천한 나의 눈에도 때로 오락가락 인간적인 부분이 느껴졌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 중 말씀에 은혜를 받았던 한 목사님께 조심스럽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한 끝에 교회 큐티 양육 프로그램에 들어갔고 언니와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아직도 코로나 이전 중국에서 목숨 걸고 선교하던 언니의 믿음과 신앙의 열정을 높이 사고 언니의 사역을 응원하지만 신앙의 코드가 맞지 않음을 알기에 먼발치에서 기도할 뿐이다.
나의 시어머님은 전도사님이셨다.(작년에 은퇴를 하셨다.) 남동생 교회에서 사역을 해오셨는데 몇 해 전인가 사모님(동생의 아내. 즉, 올케를 이렇게 칭하신다.)이 꿈을 꾸었는데 아드님(내 남편)이 무슨 열매인가를 가득 안고 환하게 서있었다고 그 해에 풍성한 열매(물질)를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희망에 부풀어 전화를 하신 적이 있다.
내 남편은 자신의 신상에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기도 제목인 사람이다. 처음 듣고는 뭐 저런 것을 구하나 했는데 이제는 나도 평안한 게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그 꿈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감사하게 주님은 사랑하는 아들의 바람을 들어주셔서 남편의 신상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또 남편에게 시외삼촌 목사님이 치유에 은사가 있다며 허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받으라고 시어머님이 권유하셔서 기도를 받은 것이 어언 십 년이 지나가는 것 같은데 남편의 허리는 놀랍도록 고대로 주기적으로 변함없이 아프다. 정말 너무 변화가 없어서 놀라울 지경이다.
그때만 해도 나도 시어머님 말씀대로 목사님께 치유의 은사가 있다니 그런가 보다 믿기까지 했는데 참 서로 민망한 노릇이다. 우리는 모두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기도받은 사람은 왜 기도했는데 낫지 않는지 묻지도 않았고 기도 해준 사람도 기도 후에 치유되었는지 묻지 않고 지낸다.
시외삼촌 내외분과 시어머님이 믿는 마음으로 하신 일인 것은 알겠지만 나는 어머님이 자꾸만 목사님 내외가 영적으로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언급하시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능력 주시는 이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은 없지만 그건 내가 특별해서는 아니다.
꿈에 주님이 찾아와 말씀을 하실 수는 있지만(실제로 현시대에도 이런 영적인 현상을 통해 역사하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믿는다.) 우리가 모두 요셉이 아닌 고로 모든 꿈이 주님의 계시라고 하지는 말자.
눈 감고 꿈을 꾸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을 구할 수 있다. 아껴서 잘 피지도 않고 모셔둔 성경을 펼쳐 보자.
하나님은 깨어서도 보고 들을 수 있게 이미 말씀하셨다. 그렇게 두꺼운 책에 한가득 우리에게 하실 말씀을 적어주시지 않았나.
우리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찬송가 가사처럼 “성경에 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