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명절에 시집에 갔을 때, 시누는 거부를 거부한다는 표정과 말투로 “내년 아버지 팔순에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리고 곁에서 시어머님은 “그래 더 나이 들기 전에”라고 거드셨다.
신랑 왼쪽 임플란트 할 돈 모으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있고 내년에 집주인이 세를 올린다고 해서 허리띠를 졸라 메야할 형편이다.
사는 게 구차한 지경은 아니지만 여유가 없다.
그래도 내게 늘 잘 대해 주시는 시아버님 팔순이 아닌가. 무언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약소한 잔치정도) 신랑에게 은행 어플에서 적금 상품 하나를 공유하기로 보냈다.
이걸 보낸 의도를 설명하려는데 금세
“적금 들었어. 2년 만기로 들었어.(헉! 팔순은 내년인데) 이탈리아(엥?) 비행기 표 값은 될 거야.”라고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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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나는 다시 다른 자유 적금 상품을 공유했다. 그리고 아버님 팔순 때문에 돈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신랑에게 답이 왔다. “그건 내 용돈에서 모아보겠다.”라고....
2년짜리 적금은 “이건 우리(부부) 여행 자금”이라고.....
나는..... 아버님 팔순 경비도 생활비에서 아껴서 모아보자고 용돈은 그냥 쓰라고 했다.
내 친정 부모님은 우리 집이 뭉치면 싸우고 흩어지면 평화로운 집안이어서이기도 하지만 칠순이니 팔순이니 가족 여행을 가자는 요구는 없다.
내 부모님에게 내 돈 내고 가던 네 돈 내고 가던 그런 지출은 달갑지 않다.
그럴 돈 있으면 일단 당면 과제는 사위의 임플란트를 마저 해결하는 일이고 그다음은 딸 내외가 셋집 전전하는 신세를 면하는 일이다. 아빠는 나에게 정말 토 나오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뜰하게 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얘기해 왔다.
다만 딸 내외가 너무 없이 사는 게 안 되었기도 하고 다른 집 자식들은 유럽이고 미국이고 잘만 돌아다니니 불쌍했는지 몇 년에 한 번은 작은 적금이라도 들어서 하다못해 일본이라도 다녀오라고 한다.
딱히 딸 사위와 함께 여행씩이나 가서 별 할 이야기도 없지만 특히나 아빠에게는 그런 지출은 허튼 데 돈 쓰는 일이고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남편과 사위와 함께 가는 여행이 그 무슨 여행이란 말인가. 남편은 성질나고 사위는 눈치 보인다.
못난 자식을 둔 덕에 칠순이고 팔순이고(친정 부모님이 시부모님 보다 연세가 더 높으시다.) 뭘 하자고 할 흥이 나지 않는다. 뭐가 있어야 떵떵 거리며 잔치고 뭐고 벌일 것이 아닌가. 내가 못난 탓이다.
환갑에 당신이 경비 부담하셔서 기어코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을 주선하셨던 나의 시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하신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건지 어딘가로 떠나고 싶으신 건지 현실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좋으신 건지 알 수 없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여기저기 가보시고 싶다고 하셨다. 특히 해외는 다리 힘 빠지기 전에 다녀오고 싶으시다고......
어머님의 자녀분들이 부디 꼭 어머님 기도에 응답을 받아 물질의 성공을 얻어서 세계 여러 나라를 건강하실 때 다녀오시기를 나도 진심 응원하는 바이다.
우리 부부가 월세 보증금 올려줄 필요 없이 전세고 자가고 살아 다달이 월세로 돈백 빠져나갈 일도 없고 생활비를 쓰고도 남는 벌이면 나는 기꺼이 남편에게 어머님이랑 여행을 다니라고 할 것이다. 양가 지원 없이 한 결혼이라고 거주(집)를 한시적으로 내가 맡았었다고 내 친정에서 여행은커녕 소풍 가잔 말도 없다고 그렇게 야멸차고 박정할 생각은 없다. 풍족해서 자기 집에 물질을 흘려보내고 싶다면 말리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은 어머님 칠순에 “여행 가고 싶다” 아버님 팔순에 “국내라도 꼭 가자” 하시면 머릿속에 온통 돈 생각뿐이다. 이제 옆집 어르신이 칠순, 팔순이래도 경기를 할 판이다.
어머님의 만능 치트키인 ‘기도’의 힘을 나도 믿고 나 역시 그것밖에 의지할 것이 없는 삶이지만 물질의 축복을 구하심에 나는 의문이 있다.
갑자기 하나님이 물질을 어디다 더해 주셔야 하나.
하다못해 로또를 맞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로또를 사야 들어주실 텐데.
여행경비야 어찌 그래,
시누이도 반 보태고 시부모님도 약간은 보태시고 해서 갈 수는 있겠다만 나는 도무지 왜 이 가족이 가족여행을 가서 ‘단란’하고 ‘화목’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쌓을 공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번 명절에 그랬던 것처럼, 아버님이 “밥만 먹지 말고 좀 즐거운 얘기도 하고 그러라”고 추임새를 넣으셔야 몇 마디씩 나눌 테고 결국 내가 수다를 좀 떨어서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을 갖고 나면 어머님이 현실감각 제로의 그 아름다운 희망을 늘어놓으셔서 남편과 내가 복장이 터질 즈음에 우리의 노필터 시누이가 엄마에게 불손한 천하의 불효자 남동생을 책망하고 불문곡직하고 모든 시간과 사연을 건너뛰어 ‘시간을 달리는 소년’으로 거듭나 효도를 갖다 바치기를 종용할 것이다.
그리고 옆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올케(야, 니네, 너, ㅇㅇ이 따위로 불리는)인 나에게도 곱지 않은 눈총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어느해 부턴가 어머님께서 슬금 슬금 부모님이 하늘나라 가시면 하늘 아래 셋(시누, 남편......그리고 왜 때문인지 나인가....보다)뿐이라고 갑자기 이상한 혈연관계를 만들어 붙이 신다. 굳이 남편과 생일이 3일 차이인 나를 끌어다 우리 집 ‘셋째’라고 부르시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다른 집 ‘둘째’다.(내가 남편과 남매라니……주여……구약시대도 아니고…)
내가 다른 집으로 굴러 들어가고 싶을 만큼 친정이 별 볼일 없는 집안도 아니고 게다가 내 혈육 진상인 것도 기가 찰 판에 그 댁 따님은 감당이 무감당이다. 나는 그런 ‘언니’를 둔 적이 없고 둘 이유도 없고 둘 생각도 없다. 참 유감이다.
어머님의 꿈과 이상은 뜬구름 같고 누나의 요구는 가슴을 짓눌러 내 남편은 또 버럭질을 할 테고 나는 내가 왜 이 꼴을 보고 있나 하는 마음에 영혼이라도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들겠지.
효자 효녀 코스프레를 할 참이고 새삼스레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 같은 걸 연출하고 싶으면 누구라도 제발 연기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는 외삼촌들이 처갓집에 돈이던 뭐던 수태 퍼다 나르는 걸 알면서도 명절에 외숙모들만 만나면 반색을 하고 “아이고 올케 고생이 많아. 항상 고맙네.”를 한평생 잘만 하던데 말이다. 말에는 힘이 있기 마련이다. 외삼촌들의 경제력과 더불어 엄마의 이 온화한 미소를 장착한 “땡큐” 덕분에 엄마는 외숙모들에게 환영받는 시누이다.
자 이쯤에서 이 ‘가족여행’이란 누구를 위한 여행인가.
남편과 나는 일찌감치 ‘본토 아비 집을 떠나’ 왔다. 각자의 이유로 우리는 원가정에서 오래전에 정서적으로 분리되었고 결혼으로 완전히 독립하였다.
새로 만든 우리의 가정은 원가정과는 달리 역경 속에서도 순항 중이다.
남편은 종종,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주로 미국 서부 등지에서 큰 목장을 하는, 양치기 개 한 마리쯤 뛰어다는 풍경이 나오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향하는 아들에게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라. 우리는 항상 여기 있단다.”
라며 손을 흔들어 주는 부모님을 보면 그런 부모를 저런 고향집을 갖고 싶다고 했다.
각박한 세상에서 실패하고 지쳤을 때 돌아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에게 평생 비빌 언덕이 없었던 까닭이다.
돌아갈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 떠나자고 하지 마시고 칠순이고 팔순이고 가족여행은 가고 싶은 사람들끼리(아마도 어머님과 시누이) 갔으면 좋겠다.
팔순인 당사자, 시아버님은 언젠가 나에게 “나는 바람처럼 훨훨 떠나가고 싶다”(떠나갈 거라고 하셨던가?)고 하셨다. 아버님은 여행이 아닌 자유를 원하시는 것이다.
‘가족여행’ 다닌다고 새삼스레 없던 ‘유대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내가 유년시절 수태 다녀보아 안다) 그리고 우리 시집에 아들 딸 손 붙잡고 산으로 들로 캠핑이니 체험이니 다닐 시절은 불우하게 지나쳐갔다.
그리고 어느 집이던 새삼스럽게 자녀의 결혼으로 안 하던 가족 행사를 한다 한들 자녀의 배우자는 윤활유도 접착제도 되어 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