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누이만 미워하냐고?

by neveres

브런치에서 왜 ‘시누이’를 싫어하는지 의문이라는 요지의 글을 읽다가


‘아.... 이걸 정말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그 미움받는 ‘시누이’에게 누군가의 올케인 내가 굳이 답을 좀 해보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움받는’ 내지는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 해당하니 시누올케 사이가 돈독한 경우 지나쳐 가시길. 아니면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 있으니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다.



브런치에 실린 글에서 누군가는 ‘나는 너무 괜찮은 시누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왜 시누이가 공공의 적이 되어 싫은 존재가 되곤 하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일단 ‘시누이짓’을 하지 않거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짓’이란 무엇인가? 보통 부정적인 언행을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기본적인 상식으로 우리는 타인에게 부정적, 공격적 말과 행위를 하는 것을 터부시 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런 ‘짓’을 했을 경우 반대로 돌아올 반격이나 비난, 정도가 지나치면 처벌을 예상하기에 도덕과 양심에 굳이 기대지 않아도 하지 말아야 할 일임을 안다. 한만큼 되돌아오거나 그 이상 내게 피해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누이짓’ 같은 것이 가능하고 가능했던 이유는 상대가 내게 반격할 수 없는 존재이거나 그런 존재라고 ‘생각’ 혹은 ‘착각’하는 까닭이다.


내 남자형제의 배우자에게 내가 ‘시누이짓’을 한다 한들 나의 안전과 안녕이 보장될 것이라는 이 믿음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집안의 재력, 권력, 상대적으로 능력이나 배경이 부족해서 밟아도 꿈틀 하지 못할 것 같은 올케를 둔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어이없게도 내가 어느 부부의 ‘남자’ 쪽 가족이라는 이유다. 처형, 처제, 처남도 진상일 수 있지만 그들 호칭 뒤에 ‘짓’이 붙은 단어를 공공연히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떤 부부 관계에 있어서 남성의 가족이라는 것이 우위를 점하기에는 요즘 남자들이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나 수입, 집안 재력이 열등한 여성과 결혼해서 그녀의 호구지책이 되거나 자녀 양육과 살림을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자신은 ‘가장’이 되는 것을 무엇보다 그 ‘남자’들이 원치 않는다. 시집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그 우위와 기득권을 없앤 건 남의 집 딸들이 아닌 그 집 ‘아들’들이다. 그리고 요즘 여자들이 교육이나 취업에 차별을 받는 세상도 아니지 않은가. 갑질을 하고 싶어도 참 쉽지가 않다.



그리고 시누올케 사이에 가장 큰 문제는 입장의 차이다.


시누에게 남자형제의 행복과 부부 관계의 원만함, 혹은 유지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모’이고 내 ‘집안’이다.


올케 입장에서 시집 식구는 결혼에 따른 부수적인 관계일 뿐 가장 중요한 건 부부 두 사람의 행복이다.


입장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상충한다.


이 시누이라는 존재가 미혼이나 비혼일 경우, 시누이는 부모에 대한 애착이 결혼해서 원가정을 떠난 형제, 자매에 비해 더 큰 경우가 많다. 부모와 자신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유일한(형제, 자매가 부모처럼 절대적인 내편일 수는 없으니) 가족인 부모에 대한 애착이 커진다. 이런 가족 간의 감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만.


결혼으로 독립된 가정을 이룬 형제와(그 배우자) 자신의 부모에 대한 관심과 애정, 시간, 물질을 할애하는 정도가 반비례함에 불만을 가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들에게 가족은 결혼해서 분리 독립된 그들의 가족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자신과 다른 것을 알지만 알수록 불만이 쌓인다.


그들은 그냥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뿐이다. 어째도 자신들이 꾸린 가정이 우선이지 원가정이 우선이 될 수는 없다. 그런 걸 바랄 요량이면 제발 결혼하기 전에 오빠나 남동생 발목을 붙잡으시라. 그들은 떠난 것이지 나가서 우리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 줄 누굴 데려온 것이 아니다.


가령 ‘가족여행’이라는 말을 놓고 생각해 보아도 결혼한 형제에게 ‘가족’은 배우자와 자신(자녀가 있으면 자신의 자녀까지)이 가는 여행도(아니 이렇게 가는 여행이!) ‘가족여행’이다. 그러나 시누이 입장에서는 ‘우리 엄마, 아빠, 나, 내 형제 그리고 형제와 결혼했으니 당연히 그 배우자’가 다 같이 가는 것이 ‘가족여행’이다.


시누이가 남자형제 부부만 다녀온 여행을 “지들끼리만”이라고 발화하며 죄인 취급할 때만큼 황당한 경우도 없다. 그러려고 그들은 결혼했다. 둘이 행복하게 잘 살려고. 소규모 패키지여행 가이드 노릇하려고 어떤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는 없다.


그리고 어차피 부모님이 물리적, 물질적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상식적인 부부는 서로의 부모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 협력한다.


같이 놀러 가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병들거나 모아놓은 돈 없이 경제생활도 할 수 없는 부모인데 모른척하거든 그때 원망하시라. 그건 해도 된다.



그리고 요즘 들어 생각한 것이



대부분의 시누이는(시부모 또한) 내 남자형제의 배우자가 내 가족에게 하는 것만 따지고 반대로 남자형제가 그 배우자의 가족에게 그에 부합한 정도의 물질이나 시간, 노력, 감정을 들이고 있는지는 알려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시누이들도 의아해할지 모른다.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지? 하든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그렇다면 올케가 자신의 집에 뭘 하든말든 그것도 본인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아니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부모에게 형제의 배우자가 잘하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로 들리겠으나 지난 정권에서 들고 나왔으나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그 단어



“공정”과 “상식”이다. 이걸 지키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나의 남자 형제의 배우자는 ‘남’이다.


내 부모 형제는 내가 성질을 부리던 모나게 굴던 미우나 고우나 이해해 주고 감싸주지만 ‘남’한테는 그러면 최소 욕을 먹거나 최대 반격이 올 것이고 상대가 참는다 해도 과오가 없던 것이 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내가 할 일은 내 혈육의 안녕을 위해(남매 지간에 원수가 아니라면) 예의를 지키는 것과 내 부모에게 귤 한쪽이라도 사들고 왔거든 ‘감사 인사’ 정도 하면 될 일이다. 혈육이 결혼해서 갖게 된 가정과 배우자와의 관계 안에 나의 자리 나 역할은 없다. 거기 끼어 들어서 내 부모의 대변인을 자처하지 말자.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는 나와는 별개로 이뤄지는 것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인격적인 관계가 잘 형성되면 서로 알아서 마음이고 물질이고 주고받고 할 것이다.


이렇듯 서로 입장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니 어차피 부딪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 관계에서 서로의 최선은 각자의 입장에 충실하되 무례하지 않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시누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며느리들.


제발! 부디! 그냥! 대놓고 말하자.


괜찮은 척, 착한 척 “네” “네” 해놓고 세월 지나서 의식조차 못하는 누군가를 “가해자”로 만드는 것도 어쩌면 폭력이다.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갈아 넣어서 지켜야 하는 ‘가족 간의 평화’가 나에게 무슨 ‘평화’인가 그 ‘평화’ 로운 ‘가족’ 중에 내가 없는데.


참으면 병 된다는 말 모르시는가. 아프면 나만 손해다.



이 글의 서두에도 밝혀 두었듯이 시누올케가 사이가 불편할 경우에 해당되는 내용을 써 본 글이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서로 잘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장황하고 날 선 이야기가 왜 필요하겠나. 조금 불편한 언행도 서로 용납하면서 잘 살 텐데. 세상 어딘가에 유니콘같은 시누이도 존재할지 모른다.



나도 시누이가 있는 올케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나는 시누이 때문에 시부모님께 안 하고 있는 일은 있어도


그로 인해 더 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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