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익 퍽!
“깨갱!”
오늘도 여지없이 날아오는 슬리퍼에 얻어맞고 말았다.
아파할 새도 없이 집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아까 아침 녘에 피곤한 얼굴로 돌아온 주인집 형이 또 화가 난 모양이다.
아저씨, 아줌마, 누나도 다 깨어서 활동할 시간인데 그제서야 집에 들어와 잠을 청하는 형은 내가 짖는 소리에 또 잠이 깬 것이다. 그럴 때면 호통소리와 함께 슬리퍼가 날아오기 마련이다.
하..... 낯선 사람이 보이거나 저 윗집에 사나운 세 마리 개들 중 하나가 또 내려와서 행패를 부리면 나야 짖을 수밖에..... 아줌마가 밥을 먹여주니 밥값을 하는 것뿐인데 왜 남들 잘 때 안 자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집에 들어와서는 저 난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막말로 형이 밤에도 집에 있고 낮에도 깨어있으면 내가 집 지키는 것이 훨씬 수월할 텐데 아픈 아저씨랑 힘없는 아줌마, 누나밖에 없는 집을 열심히 지킨 죄밖에 없는 나에게 너무 하다 싶다.
아프고 서럽지만 목줄에 메여있어 잠시 피해서 서러움을 달래려 해도 천상 형이 다시 잠들 때까지 숨죽여서 엎드려있을밖에....... 또 형의 잠을 깨울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처음 이 집에 온건 아줌마네 식구들이 이 동네로 이사를 하면서였다. 처음 본 동네의 모습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내 눈에도 무척 낯설었다.
이전 동네에서 내가 보아온 사람이 사는 집들은 단단하고 튼튼한 모양에 주변에 담장이 쳐있기도 했는데 이 동네는 비닐로 지어진 집들만 즐비하게 모여 있었다. 담장도 철문도 없는 비닐로 된 집들이라 나 같이 집 지키는 개가 필요해서 데려왔을 것이다.
아줌마와 누나가 나를 데려와서 지어준 이름은 ‘순돌이’였다.
판자에 비닐로 지어진 집은 벽도 문도 허술해서 내가 부지런히 촉각을 세우고 낯선 사람이라도 기웃거릴라치면 냅다 짖어서 쫓아내거나 식구들한테 알려야 한다. 그게 아줌마가 아침저녁밥을 챙겨주는데 대한 보답이고 이 집에서 내 역할이자 의무인 것이다.
처음 이 집에 이사를 왔을 때 착하게 보이는 아줌마는 형과 누나를 끌어안고 많이 우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저씨가 집에 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
냄새나 낌새를 보아 아줌마, 아저씨와 형, 누나는 한 가족 같았다. 아저씨가 왜 홀로 뒤늦게 집에 오신 지는 알 수 없지만 아저씨에게서 나는 냄새로 보아 아프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남자 사람이 한 명 늘었다고 해도 병든 아저씨는 집을 지키는데 별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를 늦출 수도 뭘 기대할 수도 없었다.
이 집에서 그나마 위협적이고 힘 있어 보이는 유일한 남자사람은 형인데 이 형이 언젠가부터 집을 자주 비우고 밤을 새고 아침에야 들어와서 잠만 자고 다시 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밥을 주고 집을 나가서 빈집을 지키고 있으면 저녁에 들어와서 또 밥을 주고 잠을 자는데 형은 밥을 챙겨주는 일도 없고 집을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도무지 들쑥 날쑥이었다.
나는 형이 싫지 않은데 형은 도통 내게 밥을 챙겨주는 일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일도 없고 늘 무심하고 귀찮아하다가 오늘처럼 내가 짖는 소리에 잠이라도 깰라치면 슬리퍼를 던지며 호통을 치는 것이다.
집과 식구들을 지키는 일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나는 꽤 동질감을 느끼는데 형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개라고 무시하나?
그래도 아줌마가 밥도 잘 챙겨주고 내가 집 문 앞에 싸 놓은 똥을 형이 밟기 전에 누나가 곧잘 치워주기도 하고 살뜰히 보살펴 주니 보초서는 일이 좀 고달파도 딱히 불만은 없다. 다만, 까칠한 형이 조금 서운할 뿐.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비닐로 지어진 윗집에 살고 있는 커다란 세 마리 개들이 내게는 도둑보다 더 큰 위협이었다.
그 개들은 목줄로 메여있지 않아서 늘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했다. 그 개들의 주인은 혼자 사는 아저씨인데 우리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멀찍이 서도 술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고 그 집 개들은 늘 배를 곯았다. 그렇게 굶주린 개 세 마리가 내 밥그릇을 노리고 공격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한 마리는 털이 불에 그을리고 탄 상처가 있는 놈이었는데 유난히 사납고 늘 화가 나있었다. 원래 살던 곳이 불타서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된 건지는 몰라도 아저씨는 늘 술을 마시고 개들을 돌보지 않았고 개들도 딱히 집을 지키는 것도 집을 떠나 떠도는 것도 아닌 상태로 서로에게 화가 난 건지 이 동네에 화가 난 건지 불타버린 이 전 동네로 돌아갈 수 없어서인지 서글픔과 분노가 뒤섞인 상태였다.
어쨌든
정말 큰 문제는 이 개들이 내 밥그릇을 노리고 달려들 때마다 내가 속수무책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이들과 다르게 목줄에 메여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밥그릇을 빼앗기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온 힘을 다해 짖어대고 그럴 때마다 큰 개들이 물고 때려도 목줄 때문에 피할 수 없어서 고스란히 밥도 빼앗기고 얻어맞아 다치기 일쑤였던 것이다.
목줄이 풀려있다 한들 상대는 세 마리이고 몸집도 나보다 곱절이상 커서 당해낼 재간은 없겠으나 적어도 실컷 대들어보다가 안되면 도망쳐서 얻어맞는 거라도 면해보면 좋을 텐데 단단히 묶은 목줄 탓에 억울한 매타작을 피할 길이 없었다.
아침부터 슬리퍼로 얻어맞고 잔뜩 풀이 죽어 엎드려있는데..... 오늘은 아주 날을 잡은 모양이다. 윗집 개들이 굶주리고 있는 대로 화가 나서 우리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얼른 몸을 일으켜 나도 한껏 이를 들어내고 으르렁 거리며 한바탕 짖어서 쫓아보내려고 하던 찰나 조금 전 형의 호통소리가 생각났다. 다시 형의 잠을 깨울 수는 없는 노릇. 어차피 오늘은 이리 채이고 저리 맞는 날인가 보다 하는 수밖에.
결국,
소리를 안 내느라 대어들 지도 않았는데 윗집 개들에게 이유 없는 분풀이를 실컷 당하고 아침에 아줌마가 주신 밥은 남김없이 다 빼앗겼다. 속 쓰리고 분해서 물리고 터진 상처를 핥으며 속상한 마음에 낑낑거리고 있는데 비닐문이 열리면서 형이 나왔다.
난리통에 잠이 깨서 또 성을 내는 건 아닌지 눈치를 보면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차에 형이 내게 다가와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갑자기 큰소리를 내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나에게 성을 내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내 몸에 난 상처를 살펴보다가 여기저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걸 보니 ‘누가 그랬냐!? “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형이 나를 위해 화를 내주고 있었다!
그것만도 고마워서 눈물이 찔끔 났는데 어느샌가 형이 내 목줄을 기둥에서 풀어 손에 감아쥐고 내게 앞장서라는 듯이 데리고 집을 나섰다.
잔뜩 흥분한 형을 이끌고 윗집으로 향해 가는 나는 너무 가슴이 벅차올라서 몸이 둥둥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윗집에 다다랐을 때 그 집 개 세 마리는 배를 채우고 노곤했는지 느긋하게 누워서 별 경계심도 없이 우리를 쳐다보고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형이 나를 향해 무언가 말했다. 표정과 말투를 보아 ‘쟤들이냐? “는 듯했다. 나는 힘껏 소리를 내서 맞다고 대답을 했다. 그간의 설움을 모두 담아!
“멍! 멍멍!”
형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짱돌 세 개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그 개들을 향해 던졌다. 세 개중 두 개는 빗맞았고 한 개는 명중이었다.
“깽!깨갱깽!”
빠르게 날아간 돌이 무척 아팠는지 덩치가 큰 개가 깽깽거리는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그제서야 비닐이 너덜거리는 문짝이 열리면서 그 집 아저씨가 나왔다. 형은 나를 이끌고 아저씨에게 거침없이 다가갔다. 아저씨에게 나를 보이며 무섭게 다그치는 형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대걸이를 하면 이 싸움이 길어질 것 같았는데 어쩐 일인지 아저씨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몇 마디 하더니 집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형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고 돌을 피해 저만치 도망친 개들이 분노와 공포에 찬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놈들을 무시한 채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형과 함께 여서 어찌나 신이 나던지. 형이 내편을 들어주었다!
집에 와서 형은 내 비어버린 밥그릇을 채워 주고 허겁지겁 밥을 먹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슬쩍 머리와 등을 쓸어주면서 뭔가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 형을 올려다보았는데 형의 눈이 참 따뜻했다. 그리고 조금 슬퍼 보였다. 어쩐지 그 순간 내가 형 같고 형이 나 같았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그 후로도 대낮에 형의 잠을 방해하면 여지없이 슬리퍼가 날아왔지만 이전만큼 형이 무섭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 집을 지키는 동지이고 나는 그날 이후로 정말 형의 ‘동생’이 된 기분이었으니까.
나는 비닐로 지은 집을 지키는 개 ‘순돌이’다.
이 이야기는 제 남편이 실제로 비닐하우스 촌에 거주했던 시절 집에서 기르던 개와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써본 짧은 소설입니다. 디테일한 내용은 저의상상에 기반한 허구입니다.
종로구 효자동 토박이인 저는 강남의 부동산 개발 붐 시절에 일어났던 사건사고들에 무지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 친구였던 지금의 신랑을 만나려고 가끔 갔던 강남역이 제가 아는 강남의 모습이었습니다.
멀지 않은 어딘가에 비닐하우스를 개조해서 거주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지금도 세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니 이 글이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어쩐지 한 번은 ‘순돌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아.... 이 글의 화자인 개, ‘순돌이’는 실존했던 제 신랑의 가족이 키우던 개이고 이름도 ‘본명’입니다.
신랑이 이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비닐하우스 촌을 개선장군처럼 걸어오는 그 시절 신랑과 ‘순돌이’가 떠올라 가슴이 따뜻하고 어쩐지 짠해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