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증을 좋아한다.
워낙에도 이야기를 듣기도 좋아하고 읽기도 좋아하고 더군다나 하나님께 은혜받아 예수 믿고 병 고침 받고 삶이 달라지고 물질도 풍성하게 축복받았다니 은혜가 되고 감동도 있고 웃음도 있다.
여러 기독교 방송의 간증 프로그램을 보고 들으면서 울다가 웃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던 지난겨울,
나와 코드가 맞아 설교가 귀에 잘 들어오는 목사님도 알게 되었고 찬양에 은혜가 넘치는 찬양 사역자도 알게 되었고 어떤 이의 삶의 이야기는 주변에 안 믿는 이들에게도 한 번쯤 들어보라고 권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도 있었기에 은혜가 풍성한 시간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세무사사무실 일은 하반기에 비교적 일이 여유가 있는 편이고 근무 환경이 자유로워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전표를 입력하거나 서류철을 하면서 몇 시간이고 간증을 들으면서 울컥하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몇 달을 보냈다.
생각해 보면 즐거웠고 은혜가 되었던 시간이었는데 어느 순간 말씀보고 성경 읽는 시간보다 간증을 찾아 듣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퇴근해서 집에 가서도 간증 프로그램을 찾아서 시청하면서 점점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성경 말씀이 입에 쓴 약이었다면 간증은 사탕 같았고 성경이 심각한 이론서 같으면 간증은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소설 같았다.
나는 점점 ‘간증’을 듣는 것에 ‘중독’되어 가고 있었다.
간증을 통해 주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도전을 받아 주님과의 관계를 더 친밀히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다른 이가 얻은 ‘열매’와 그 ‘이야기’를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은혜와 감동은 반감되고 재미와 탐닉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남의 이야기 같이 재미있는 것이 또 있을까.
정말 한 사람 한 사람 드라마가 따로 없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예능보다 재미있고 요즘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했다. 게다가, 그 결말에는 하나님이 구세주가 되시어 묶인 것을 풀고 주린 것을 채워주실 지니 해피엔딩이 보장된 스토리라 마음마저 편안했다.
이렇게 간증에 맛(?) 들리어 지내던 어느 날 불현듯 나는 이 중독에서 벗어나게 됐다.
지난해 말 교회에서 하는 양육과정 중 하나에 참여하던 차에 유난히 집중이 되지 않고 내용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병행하고 있던 자격증 시험 준비가 맞물리니 더 싫증이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직분 때문에 학점을 채우려고 양육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니 수료하지 못한다고 해도 누가 뭐랄 것도 내 스스로 목표를 채우지 못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래도 중도에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으니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 인간적으로 이번에 이 과정은 정말 너무 집중이 안 되고 유난히 힘들고 저랑은 진짜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택한 과정이니 제가 이걸 수료하면 저에게 선물을 하나 주세요.”
그리고 마음속 저 깊은 곳에 나는 이미 선물을 정해 놓았다.
마치,
이미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아빠임을 아는 아이가 넌지시 가지고 싶은 선물을 암시하듯이 나는 이 ‘고난의 시간’ 중에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주님도 이쯤 되면 이 ‘선물’의 정체를 아셨을 테지!
과정은 종반을 향해 갔고 자격증 시험 날도 다가왔다. 시험 전날 어쩐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나는 조용히 집에 있던 오래된 성경책을 집어 들었다.
오래전 은행 본점에서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성당에 다니던 대리님이 내게 선물한 ‘레노바레 성경’이었다. 이 성경의 편찬자는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의 원로 목사님이시다. 그때는 내가 이 교회에 다니게 될 줄 몰랐지만.
어째서 성당에 다니던 그녀가 내게 이 성경을 선물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은행이 몸에 잘 맞지 않는 옷 같았던 이 대리님이 퇴사하면서 내게 선물로 성경책을 주고 가셨다.
오랫동안 펴보지 않았던 성경은 표지가 부식돼서 가루가 떨어지고 있었기에 그즈음 인터넷으로 표지 리폼 DIY 세트를 구매해 놓았었다.
다음날이 시험인데 무슨 마음이었는지 나는 늦도록 성경책 리폼을 하면서 그 밤을 보냈다.
그래서는 아니었겠으나,
나는 그 자격증 시험에 떨어졌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고자 하신 선물은 이미 글을 읽는 이들이 눈치챘듯이 ‘성경’이었다.
그 힘겨웠던 교회 양육과정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을 읽고 싶다는 열망을 ‘선물’로 주셨다. 이제껏 두어 번 통독도 하고 매일 큐티도 하고 매주 설교 본문도 보고 하면서 이미 보고 있는 그 성경을 새삼스레 ‘다시’ 보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간증 프로그램 앞에서 마음을 빼앗겨 울고 웃던 ‘나 홀로 집회’를 그만두고 리폼한 성경책을 사무실에 가져와서 매일 아침 업무시간 전에 두장이고 석장이고 읽기 시작했다.
올해까지도 이 성경 읽기는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일터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첫 일과가 말씀 보는 것이기를 주께 기도한다.
간증 자체가 부정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내게 간증의 ‘스토리’를 통해 많은 것을 주셨다. 훌륭한 메신저들은 지금까지 나에게 신앙생활에 보탬이 되는 존재들이어서 나는 그들의 ‘설교’와 ‘찬양’을 통해 매일 은혜받는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내가 어떤 이야기보다도 ‘말씀’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주님의 뜻을 알고 거기서 감동하고 깨달아 알아가기를 원하신다.
다른 이들에게 받는 소개는 충분하다. 주님은 직접적인 나와의 교제를 원하신다.
그렇게 나와 주님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