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하고 하루 종일 사람 만나느라 토할 것 같았던 평범한(?) 어느 날 오후였다.
점심시간 끝나자마자 웬 아줌마가 가족관계 서류랑 통장, OTP카드 등을 바리바리 들고 왔다.
아줌마: 아들이 나한테 통장을....(아들이랑 나랑) 같이 와서 만들었어요 근데 공인인증서도 만들고 같이 와서...(아들이) 전화를 안 받네... 공인인증서 비밀번호가 틀리는데.... 내가 틀렸다고 (아들한테) 전화하면 (전에는) 가르쳐주고.... 근데 전화를 안 받아.
통장은 아들 명의라고 했다.
나: 저... 그래서 제가 뭘 해드릴까요?(아니 아들이 전화를 안 받는데 어쩌라고?)
아줌마: 아 그러니까 아들이 전화를 안 받고 인증서 비밀번호는 다른 사람이 바꾼 건지 뭔지...(아들이) 전화를 안 받고....
대기가 15명... 나는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 네 그러니까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그러니까 날 보고 뭘 어쩌라고?)
아줌마: 통장에서 (아들 혹은 누군가가) 돈을 못 찾게 해 줘요!
하...... 차라리 아들을 찾아 달래지 왜?
나: 아드님이 몇 살이신데요?
아줌마: 88(년생)
나: 88이요!? 성인이시네~(미성년자여도 그냥 되는 건 아님) 안 됩니다. 지급정지 못 해 드려요.
아줌마: 아니~!!!!!!!!!!!!(아들이) 전화도 안 받고~이거 나 만들어준 통장이라니까~같이 와서 한 거라고~!
나: 안 돼요. 아드님이 미성년자도 아니고... 가족이 와서 지급 정지 요청하신다고 통장에서 인출을 못하게 해 드릴 수는 없어요!
아줌마: 아니~번호를 바꿨는지 아들이 전화를 안 받는 다니까~!
근데 이 아줌마는 왜 아까부터 반말인가!? 많이들 그러지만서도.....
나: 연락 안 되는 건 가족끼리 해결하시고요.(내 전화는 받겠냐? 받을지도 모르지만)
아줌마: 아니~
이쯤에서 정말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빡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 자.... 생각을 해보세요
내가 성인인데.... 내가 전화 연락이 안 된다고
엄마가. 가족 관계서류를 들고 은행에 갔더니..
은행에서 지급정지를 해줬다고 하면...
예금주가 가만히 있겠어요!? 저희 큰일 나요!
못 해 드려요!
이때부터는 뒤에 책임자가 나와서 성인이셔서 못 해 드린다 안 된다 다시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니 안 먹힌다 싶었는지 마지못해 자리를 떠났다.
그 통장은 분명 아줌마 명의의 통장이 아니었고 그 안에 들어있는 돈이 설사(이도 알 수도 없고 내 알바도 아니다만) 아줌마 돈이라 한 들 이건 해줄 수 없는 일이다. 그 돈이 누구 돈이던 아들이 아줌마가 그 돈을 못 찾게 하려는 의지가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이 아줌마를 쫓아(?) 보내고 다시 창구를 땡겼는데......(번호표를 눌러서 호번 하는 걸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는 인상이 평범한 20대 초반의 남자 손님이 자리로 와서 앉았다. 그런데 어쩐지 표정이 좀 이상하다.
손님: 저기요.... 일단 제가... 이런 업무 처리하러 와서 정말 죄송하고요...
나 : (눈빛으로.... 응?)
손님: 제가 게임사이트에서요... 아이템을 팔려고 했는데.... 그게 로봇인지 사람인지 검증을 하라는 절차가 있어서 아이템을 구입하는 결제를 해보라고 해서요....
아.......... 여기까지만 듣고도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터지기 시작했다. “에라 이 녀석아!” 하는 심정이 들었다.
손님: 근데 결제 승인이 실제로 되고 아이템은 지급된 게 없고요.... 000원이..(잘 안 들림)
나: 얼마요?
손님: 백오십*만원이요....
헐...... 게임을 안 하는 내 입장에서도 이게 대체 뭔 놈의 아이템을 샀길래 싶었다.
나: 저... 근데... 제가 뭘 도와 드릴까요?(어쩌라고?)
손님 : 아 그 사이트에 전화해서 말씀 좀 해주실 수 없을까요?
나: (전화해서 어쩌라고!?) 승인 취소 해달라고요?
손님: 네...
나: (답답한 마음에) 무슨 사이트예요?
손님: 해외 사이트요...
에라이! 해삼 멍게 말미잘 같은 녀석아!!!!!!!!!!!!!
속으로는 눈앞에 그 청년이 너무 한심하고 기가 막혔지만 완곡어법으로 “안 된다. 그건 우리가 전화해서 취소해 달라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진지하게 대답해 주었다. ‘내가 이 소릴 대체 왜 하고 앉았나?’ 싶었으나 한심하게 여긴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되도록 담담하되 걱정을 담아 너의 고민을 충분히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말해주었다.
청년은 한껏 풀이 죽어 일어나 나갔다. 아마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이미 사기를 당한 것이고 결제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도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찾아왔을 것이다...... 만!
이 또한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결제된 승인 내역을 카드사에 임의로 취소할 수 있게 된다면 가맹점인들 가만히 있을 것인가!? 이 케이스는 사기(이 또한 단정 지을 수 없지만)라 쳐도 취소해달라는 대로 다 결제 취소를 해줄 요량이면 카드 값 낼 일이 없지 않겠나.
은행원은 언제나 친절하고 성의 있게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열린 마음으로 그곳에 앉아있지만 이렇듯, 살다 보면 ‘해줄 수 없는 일’이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제발 그러니....... 안되다면 좀 안 되는 줄 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