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따라 예수 따라가네

애니 베어드 <따라 따라 예수 따라가네>

by neveres

내가 어릴 때 우리 엄마는 무속에 기대어 사업을 했었다.


교회에 다니게 된 이후에도 때때로 그 시절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용한 점쟁이를 끼고 사업을 하다가 그 점쟁이가 죽고 사업도 망했다고 했다.


“나쁜 건 다 맞췄어.”


엄마가 그 점쟁이에 대해 해준 이야기였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은 다 미리 말해줬노라고… 점쟁이가 죽기 전 병원에도 찾아갔었다는데 아마도 예수 믿기 전까지는 사업이 망한 것이 점쟁이가 죽어서라고 믿었을지 모른다.


이제는 너무 오래전 이야기이고 엄마도 교회에 나간 이후로는 무속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그 점쟁이가 나에게 ‘분홍색’ 옷을 입혀야 좋다고 한 이야기만큼은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지 인디언핑크나 연분홍색 옷을 입으면 그렇게 잘했다 칭찬을 했었다. 검은색 어두운 색 옷은 입지 말라고 했던 게 말은 안 했지만 아마도 그건 안 좋다고 했나 보다. 그러나 살이 찐 걸 어쩌랴… 이제 내가 가진 옷의 90%가 남색, 검은색인걸… 핑크 돼지가 되어 점쟁이 말을 따르지 않아도 좋은 믿음의 가정이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무속이 판을 치지만 더 엄혹한 시절, 더 암흑 같았던 시절의 이야기 1900년대 초반의 조선의 이야기… 오늘은 윌리엄 베어드와 애니 베어드 선교사 부부가 조선에 와서 마주한 일들을 아내인 애니 베어드 선교사가 소설로 써낸 <따라 따라 예수 따라 가네>를 만나보겠다.


주인공 보배의 할아버지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늘


울뚝불뚝 저 언덕 고개

나 죽으면 저곳으로 가리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할아버지가 생명이 다해 갈 곳을 노래함과 동시에 보배에게는 시집가는 이야기로 들려 질색을 했다.


가난한 집안 딸인 보배에게 시집이란 할아버지가 죽어서 간다는 그 저승만큼이나 두렵고 끔찍한 곳이었다. 그 시절 여자들에게 시집은 두 끼 식사와 몸에 걸칠 옷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허리가 끊어지고 손, 발이 잦아들도록 노동을 착취당하는 곳이었다고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부모 형제를 떠나 친정에서 일을 돕던 처지와는 달리 한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제일 바닥인 신세로 전락하여 ‘생산’의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딸이 아닌 아들을 낳아야 처지가 나아진다.


점점 변형되어 온 시집살이의 원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고된 노동과 남편의 무관심, 시부모와 남편에게 단지 노동력이고 사내아이를 낳아줄 용도로만 존재했던 많은 학대받던 여자들…


그리고 속절없이 가난했고 무지했으며 위생 상태가 형편없고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전염병에 자녀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


그들이 전적으로 의지했던 것은 마을에 한두 명쯤 있던 무당이었다.


이 글 속의 마을에 사는 ‘심 씨’와 ‘고판수’ 같은 무당 점쟁이들이 조선 팔도 어디서나 재물을 받고 사람들을 미혹시켜 자기 배를 불렸을 것이리라. 그들은 무지한 사람들을 조종하고 그 ‘신발’을 받기 위해 악한 마귀의 힘을 빌린다. 그렇게 그들도 조종당하고 사탄, 마귀의 힘을 빌려 부를 얻는 대신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이들이 마을에 나타났다. 서양인 선교사 부부라고 했다.


마을에 서양인 선교사를 만난 동네 아낙들의 반응이 제법 재미나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는 애니 베어드에게 무당 심 씨와 마을 여자들은 저마다 말한다.


“신은 멀리 있지만 귀신은 가까이 있다.”


라며 경계하고 각을 세우거나


“섬기는 것이 많을수록 좋겠지요.”


라고 호기심과 호의를 보이기도 한다.


첫 남편을 잃고 시집에서 다른 남자에게 팔려간 보배가 아이마저 잃고 난 후 예배당으로 이끌려 갔던 것은 이 사람들이 선교사를 만나고 와서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평안’


부귀영화와 만사형통이 아닌, 그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였다. 아무것도 가질 수도 바랄 수도 없었기에 더 소중한 것을 그녀는 깨달았던 것이다.


아무리 재물을 가져다 바쳐도 무당은 사람들에게 줄 수 없었던 것을 보배는 비로소 예배의 자리에서 얻게 된다.


그녀의 신앙생활을 핍박하던 남편을 필두로 마을 사람들과 귀신에게 힘을 빌려 쓰던 무당들까지 회심하고 마을에 이전에 없던 ‘평안’이 찾아온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찾아간 친정에 남아있던 할아버지에게 보배는 ‘울뚝불뚝’ 대신 ‘따라 따라 예수 따라가네’라고 노래하시라 크게 말한다.


아주 짧은 이 소설은 외국인 선교사 부인이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 시절을 잘 담아내고 있어 잠시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 속의 어두운 시절에 드러난 암흑보다 지금 이 화려하고 안락한 시대에 더 교묘하고 사악한 악이 그 모습을 그럴듯하게 가장한 채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다.


더 분별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때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어 보았다. 누군가에는 깨달음과 믿음의 도전이 되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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