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합

미야베 미유키 <진상>

by neveres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은 나에게 마치 맛깔스러운 찬합을 열어서 하나하나 맛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화차>, <솔로몬의 위증>, <이름 없는 독> 같은 현대물도 너무 좋아하지만 시대물은 범죄를 다루더라도 무언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고 해야 할까?


사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너무 좋아해서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라 그중 한 권만 택하기란 쉽지 않았는데 마음 같아서는 미야베 미유키 특집 연재라도 하고 싶지만... 세무사 사무실에 신고 시즌이(세무사 사무실은 일의 특성상 상반기에 일이 몰린다.) 돌아온 고로 소박하게 한 권만 골라 보았다.


‘북스피어’에서 출판되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책은 표지부터 화려하고 어여쁘다.


자~ 이제 이 고운 찬합의 뚜껑을 열어보자.


오늘의 ‘나의 사랑하는 책’은 미야베 월드 제2막의 이야기 중 <진상>이다.



시작부터 반찬가게에서 출발한다. 반찬가게 ‘오토쿠야’의 기세 좋은 주인 오토쿠와 종업원 오몬과 오산이 인근 다리 밑의 시체 흔적(모두 두려워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을 지우러 나서는 참이다. 조림가게부터 시작해 온 오토쿠야는 여전히 조림이 끓고 있는 솥단지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고 있다. 책을 펴자마자 어디에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기분이다.


현재 시점의 세 개의 살인 사건, 그리고 과거의 하나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인 동시에 <진상>은 사랑이야기이다.


해서 책의 원제는 <그이(OMAESAN)>라고 했다.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꽤 집요하게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것을 연애 감정에 결부시킨다.


후미노, 사타에, 오토시를 꽃의 이미지로 헤이시로가 표현하는 것이나 산타로의 생모 오키에의 외모가 생기 있고 젊어진 것에 대한 마사고로의 감상, 유미노스케의 한결같은 미모, 결정적인 인물 아마도 원제목에서 말하는 ‘그이’의 잘생긴 외모와 대조적으로 안타까운(?) 마지마 신노스케의 옴팡눈 등 외모와 인물들 사이의 감정을 연결 지어 이야기한다.


같은 상황, 같은 관계에서도 상대의 외모에 따라서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이다.


그러기에 용감하게 채소가게 며느리를 구해내고 든든하게 후미노를 위로해도 신노스케의 옴팡눈은 연애 상대에서 그를 배제시키고 만다. 아무리 해도 그에게는 반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꺼려지는 행위의 당사자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외모에 이끌리어 마음이 가고 사랑이 싹튼다. 아니 반한다.


이 또한 사랑이겠으나 그저 반하였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이란 반한다는 감정 그 이상의 것이라고 그래야 하는 게 아니겠냐고 이 소설에서도 나의 마음에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반했다는 마음만으로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도, 그 마음을 오래도록 유지해 나갈 수도 없다고...


사랑은 좀 더 진득한 감정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작가와 같이 나 또한 이즈쓰 헤이시로 부부의 그 담백하고 평화로운 일상에서 느껴지는 ‘사랑’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그 무해한 사랑을 더 응원하고 싶고 공감한다.



그리고 마지마 신노스케의 종조부 겐에몬이 말한


‘곁가지로 태어난 목숨’


<진상>은 사랑이야기와는 별개로 가업을 이어받을 ‘장자’가 아닌 존재로 태어난 이들의 입장(?)이랄까? 그들의 미래와 처신에 대한 고민도 이야기하고 있다.


장남으로 가업을 물려받아 미래를 보장받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선택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이들, 유미노스케와 준자부로, 겐에몬 모두 제각각 다른 모습의 삶이지만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기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단순하고 분수에 넘치지 않는 성실함이 삶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가짐을 느끼게 해 준다.


꼭 무언가를 차지하고 남들이 이야기하는 성공을 이루어야만 비로소 삶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곁가지로 태어난 목숨이라 한들,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 곁가지로 뻗어나가 자신의 열매를 맺으면 그뿐, 그 또한 나름의 인생, 스스로가 만족한다면 행복으로 충만한 삶이다.




모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누군가는 마음을 접고 베이고 잃었지만 모두가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이다.


마지마 신노스케는 결코 미남이랄 순 없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그만의 모습을 찾아갈 것이다.


유미노스케는 이제 자신의 진로를 정해야 할 순간이 찾아온 것을 느낄 것이다. 어디로 향하던 이 미소년의 앞날을 응원한다. 그의 단짝 산타로와 함께...


오토쿠야의 솥은 오늘도 더운 김을 내며 쉴 새 없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가고 가게 위층의 ‘고진도’에서는 겐에몬의 학당이 학구열로 타오르기를…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는, 해서 스스로를 찾아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즈쓰 헤이시로 부부가 유미노스케를 양자로 들일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오늘도 고헤이지는 마당을 쓸고 그네들은 한가롭게 일상의 일들로 이야기꽃을 피우기를... 그 모습이 오래도록 변치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이제 한바탕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배부른 마음으로 찬합을 닫는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진상>의 책장을 열어보시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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