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단 희망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by neveres

춘천으로 촬영을 간 남편을 만나러 십여 년 전 그 날밤에 나는 고속버스 터미널을 향해 갔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고 가벼운 짐 가방을 가지고 은행을 나서서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습관처럼 서점에 들어서서 길동무 삼아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날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제목에 반하여 무심코 집어 들었던 이 책이 그날 밤 버스를 타고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에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카밀라, 지은, 희재.... 그리고 바다와 동행했던 그 밤의 춘천 가는 길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오랜 후에 다시 집어 든 이 책이 나를 다시 그 어두운 도로를 달리던 버스 안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곧 만난다는 기대를 안고 가던 그 밤의 시간 속으로, 혹은 언젠가 가보았던 진남(통영)으로 데려간다.


내가 아는 어떤 고운 사람이 그 푸른 바다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그곳. 그 통영의 짙푸른 바다를 떠올리며 다시 이 책을 펴본다.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그리고 이 소설 속에 그 누군가에게는 카밀라 혹은 정희재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작가가 쓰지 않았으나 독자가 읽기를 원했다는 것이 혹시 그 아버지의 존재라면 알 것도 같으나 내게 이 책을 덮을 때까지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카밀라의 양아버지가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인 거지.”


라고 했던 말처럼. 아버지가 누구인 것이 그녀들의(지은이와 희재) 운명을 좌지우지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미움과 질투가 만든 거짓, 오해, 그리고 호기심과 소문.


정희재를 먼 타향으로 입양가게 한 것, 정지은을 검은 바닷속으로 빠져들게 한 것은 정작 중요한 진실은 외면하면서 하고 버릴 남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그럴싸한 사실을 진실인 양 퍼뜨리고 믿어버린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은의 아버지가 농성을 했던 이유, 자살해야 했던 이유를 궁금해했어야 했다. 크레인에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있던 아버지에게 손전등으로 ‘H.O.P.E’라는 단어를 모스부호로 보내던 남매에 대해 주목했어야 했다.


부적절한 관계에서 아이를 가졌을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어린 소녀를 매도하기 전에 이 남매에게 지옥을 선사하기 전에 그들은 진실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정지은이 친구에게 했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이 모든 오해와 절망의 끝에서 그래도 희재를 통해 희망을 이어 나가려던 지은에게 희재는 ‘날개를 단 희망’이 아니었을까.


검은 바다가 아버지와 희망과 진실을 삼켜버렸지만 자신조차 빠져들어간 그 바다에 파도처럼 날아오를 ‘날개’. 자신의 아이 정희재를 통해 진실이 살아서 희망의 날개를 달고 어느 날 그렇게 '지나간 이야기들이 모여드는 곳'의 문을 두드리기를… 지은은 바랬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다시 그 춘천 가는 버스를 타고 달리던 밤으로 돌아가 본다. 그 길의 끝에 사랑하는 이가 기다리고 있던 그 밤으로. 검은 바다같이 깊었던 그 기억 속으로. 이야기의 여운을 안고 버스를 내리던 그날의 나로 돌아가 본다.


이 겨울,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 여행지에 바다가 있다면 더욱더 깊은 여운이 되어줄 책…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여행의 동반자로 삼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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