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혼자 먹게

by neveres

“닭갈비가 조금이다. 자네 혼자 먹게나.”


우리 신혼집에 반찬을 해온 엄마가 냉장고에 붙여놓은 메모다. 이 분은 누구의 엄마인가.... 조금밖에 못해 와서 양이 좀 적겠구나 싶었나 본데.... 그렇다고 굳이 사위한테 혼자 먹으란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보통은 시어머니가 찬밥을 준 다던가 생선 조림에 무가 맛있다고 생선 토막은 아들 주고 며느리에게 무를 집어준다던가 외식하러 가서 음식 나오면 괜스레 얘기 좀 하자고 불러낸다고 하는데..... 무려 이분은 나의 친엄마다.


아빠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저녁에 내게 전화를 한다. 딱히 용건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별 일 아닌 얘기를 주구장창 하려고 전화를 건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다가 지치면 “ㅇ서방 밥 차려 줘야한다.”고 해버린다. 그럼 아빠는 부랴부랴 알았다고 전화를 끊으며 “잘 챙겨 먹여야 한다. 이제 너희도 40대인데 건강 생각해야지. ㅇ서방 잘 챙겨 먹여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너희에는 나도 들어있지 않은가? 그리고 뭘 ‘챙겨’ 먹이나..... 자식도 아니고 애완동물도 아닌데.... 맞벌이하는 처지에 왜 나한테만 저러는 걸까? 가끔 주말 저녁에 배달 음식을 펼치다가 저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남편은 음식을 차리다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똥말똥 나를 쳐다본다. 왜 쳐다보냐, 차리던 거 마저 차리지 않고!


ㅇ서방 챙기라는 말을 안 하는 사람은 양가 통틀어 우리 시아버님뿐이시다. 이러니 내가 아버님을 안 좋아할 수가 없다.


나와 남편의 출신학교는 대학 서열(?)을 나눈답시고 스카이 아래로 ‘서성한경~’어쩌구로 줄 세운 학교 중에 정확히 같은 그룹에 있다. 남편은 방송 PD이고 나는 5년 전까지 은행원이었다.(17년 11개월 차에 준정년 퇴직하고 지금은 세무사 사무실에서 세금신고업무를 한다. 집에서 노는 게 아니다!) 당신들 딸이 꿀리는 결혼을 한 게 아닌 것이 자명한데 내 부모님은 늘 저런 식이다.


그럴 이유도 없고 스스로 자기 딸 부심이 없는 것도 아닌데 ‘딸 가진 죄인’ 행세 같은 걸 한다. ‘시댁에 잘해라. 시집 욕하는 거 아니다. 연락은 자주 드리냐. 생신 챙겨라. 명절 챙겨라.’ 하다 하다 시외가 시골에서 쌀이 올라왔다고 하니 이제 거기도 뭘 챙겨드려야 한다고 안절부절이다. 명절에 내가 음식을 잘해갔다고 하면 부모님 어깨에 뽕이 차오른다. 대체 왜 저러는 것인가.


그렇다고 내 부모님이 내가 살림 잘하는 주부로 내조하며 살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일도 잘해야 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내가 은행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잠시 말을 잊지 못하셨다. 그럴만한 상황이었고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도 꾸준히 돈벌이를 했기 때문에 잠시 쉬어도 좋다고 간신히 납득했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격증을 따고 재취업했을 때 안도해 마지않았다. 딸이 몇 억을 쥐고 퇴직을 했어도 사위 밥 먹는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 내 부모님은 “내 딸은 다 잘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산다. 나는 평소 집안 살림은 물론이요. 남편 건강도 잘 챙겨야 하고 명절이면 시집에 소갈비찜에 전에 뭐에 고급지게 명절 음식도 쩍 지게 해가는 며느리여야 한다. 그리고 돈도 벌어야 한다. 맙소사!


하지만 부모님이 이렇게 옛날(?) 사람들이어서 내가 책잡히지 않고 십수 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결혼 십 년 차 까지는(이 즈음 나는 경계성 종양 수술을 했다.) 시집 행사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고 그 후로도 명절은 나름 잘 챙기고 있다. 하도 챙겨라 챙겨라 귀에 못이 박히게 듣다 보니 가끔 뭘 챙겨야 하는 게 없나 불현듯 생각이 나기도 한다.


이모저모 남편이 내 집에 하지 않는 일들을 나는 친정에서 강요받고 있지만 덕분에 이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덕분에 가끔 남편에게 큰소리도 땅땅 쳐본다.


잘난 딸로 살려니 나도 이제 40 중반인데 여간 빡 쎈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