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몇 년간은 시고모님 댁이나 시외가에서 지내지 않는 명절 당일 오전에 우리는 시댁에서 어머님 주관 하에(어머님은 전도사님이시다.) 가정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내가 이런 걸 다 해보는구나 싶어서 무척 흡족했다. 어쩐지 삶이 거룩해지는 느낌도 들고 다른 집은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여서 차례 상 차리고 명절음식 하다가 싸우기 일쑤인데 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도 했다.
명절 가족예배는 성경 말씀을 읽고 어머님이 짧게 설교 말씀을 하시고 마무리 기도로 끝이 났다. 문제는 이 마무리 기도였는데 말씀은 한 구절도 기억 못 하지만 마무리 기도에 빠짐없이 시누의 결혼과 우리 가정의 열매(우리 부부의 자녀와 남편의 물질적 성공) 맺기가 들어갔던 건 기억이 난다. 지금 돌아봐도 당사자들의 의사와도 무관한 이 기도는 어머님의 ‘소원을 말해봐’ 순서였달까.
그러던 어느 해인가 우리의 명절 가정예배는 끝이 났다. 설교 말씀을 나누시다 이야기가 어떻게 새기 시작하더니 어머님은 시험지 살 돈 2000원이 없어서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고, ‘김’을(먹는 김, 그 김 말이다.) 할 때면 그 돈을 얻을 수 있었는데 결국 그 돈이 없어서 동네 누구도 가고 누구도 갔던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며....... 우셨다. 나도 좀 울고, 시어머님과 시누는 너무나 서럽게 울면서 그날 예배는 끝이 났고 나는 이 가정예배가 우리 중 누구에게도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어머님의 지난 사연을 들어 드리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예배의 본질을 망가뜨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우리에게 이 시간은 예배시간이 아닌 게 될 것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 예배 아닌 예배에 불참 선언을 했다. 누가 우는 걸 보면 ‘질질 짠 다’고 질색하는 남편도 엄마, 누나, 자기 마누라까지 부둥켜안고 울고 불고 하기 전에 이 예배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동의해 주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써보고 싶기도 하지만 우리의 예배는 자칫 잘못하면 변질되기 쉽다. 이걸 경계하는 건 목회자도 어려운 일이다. 예배는 주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 시간에 내 원하는 바를 이뤄달라고 주님을 ‘닦달’한다.
지난 세월 한국의 기독교는 먹고살기 어려운 때를 지나서도 계속해서 주님께 ‘성공’과 ‘물질’을 달라고 주께 ‘영광’ 돌리기 위한 수단이라고 명분까지 씌워서 ‘주라고... 주라고.... 돈도 주고 건강도 주고 권력과 명예도 주시라고’ 기도를 통해 노골적인 요구를 해왔다. 일부(....라고 쓰긴 했지만... 많은 수의) 목회자들은 헌금이 그 기도를 이뤄줄 통로라고 해왔고 주보 뒷면에 ‘헌금한 사람’ 명단을 실어 ‘소원’을 ‘보증’ 해 주었다. 이래서 인간은 다 죄인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다 하다 이제 눈물바다가 된 가정예배의 불참선언을 하고 몇 해후, 집에서 잠시 쉬던 시절에 나는 이 사건을 기억해 놨다가 ‘사람이 한은 풀고 살아야지’하는 마음에 어머님을 야학에 보내드리려는 시도를 했었다. 그렇게 한이어서 예배를 드리다가 대성통곡을 하시는데 더 나이 드시기 전에 검정고시를 보게 해드려야 할 것이 아닌가.
어머님의 ‘김과 2000원’ 이야기를 듣고 엉뚱하게 친정엄마에게 “엄마는 과외씩이나 했으면서 왜 서울대를 못갔냐.”고 말 같잖은 소리를 해댔는데 엄마는 영 못 알아 들었다. 내가 시어머님이 해주신 김과 2000원 이야기를 해줬는데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엄마가 어머님보다 더 나이가 많은데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았던 것이다. 그 집 딸답게 나도 어머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야학에 대해 꽤 열심히 알아보고 어머님께 열띤 설명을 해드렸다. 학비나 책값을 보조해 드리겠다고도 했다. 어머님은 처음에 조금 호응하시는 듯하시더니 결심이 서시면 말씀하시라는 나의 말에 지금 5년째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되도록 연락은 톡으로 하신다. 그거 좀 울었다고 며느리가 칠순의 시어머니를 학교에 보내려고 한 것이다.
요즘 들어 나는 어머님은 공부가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니라 동네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가고 싶으셨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를 나와서 뭐가 되고 싶다(물론 이 욕심도 없진 않으셨다고 했지만)는 생각보다 친구들 다 갔다는 그 중학교에서 같이 학교생활을 하고 여중생, 여고생이 누리는 그 학창 시절을 누리고 싶으셨던 거겠지.
이제 40대인 나도 공부를 하려고 하면 꾀가 나고 머리가 안 돌아가서 죽겠으면서 칠순이신 시어머니를 야학에 보내려 하다니. 두 번 울었다가는 수능 치라고 할 며느리가 아닌가.
그러니 어머님 이제 그 일로 그만 우세요. 어머님은 학교 공부보다 더 귀한 성경 말씀을 줄줄 외시잖아요. 중고등학교 못 나오셨어도 대학 나온 저보다 친구도 더 많으시잖아요.
이제 그만 훌훌 털어 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