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결혼 생활이야기라기 보다 명절에 대한 대화 중에 나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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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다닐 때 친했던 동생 둘과 만나서 명절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시집에 음식을 해간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두 아이는 갑자기 “그 집 자식들은 뭐 하고 언니가 그걸 하냐!?”며 흥분했다.
만두소에 넣을 두부와 숙주의 물기를 짜고 식용유와 키친타월을 사러 아침부터 분주했던 ‘그 집 자식’을 떠올렸다. 그 집 자식은 내 집에서 나를 보조했다. 그리고 또 다른 그 집 자식 시누는 집에서 골뱅이 무침을 한 번해왔었다. 어차피 시집에 가면 어머님은 이제 되도록 음식을 해온 나보다 당신과 당신 딸이 차리고 치우고를 주도적으로 하시려고 한다.
앞서 이야기한 은행 동생 둘이 드세고 소위 요즘 아이들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40대 중반인 나랑 6살 차이니 어리지도 않다. 그냥 직장 다니면서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평범한 애들이다. 동생들의 격한 반응에 ‘얘들이 무슨 원수의 집안과 혼인을 했나.’ 싶었다.
무엇이 이렇게 이 아이들을 빡치게 한 걸까.
둘 다 신랑이 번듯한 직장이 있고 시집도 어지간히 산다. 집살 때 어느 정도 지원도 있었고 한쪽은 시집과 같은 단지 아파트인 걸로 보아 시집에서 매매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주고 계신다. 그러니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어쩌고 저쩌고 뭐 이런 사연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남의 얘기라도 시집에 음식 해서 싸들고 간다는 말이 생각만 해도 싫은 거다.
그들에게 ‘시집’이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사람 좋고 싫은데 이유 없다지만 인과관계없이 싫어하기에는 그들은 배우자의 원가족이고 이들에게는 자녀도 있으므로 내 자녀의 핏줄이다. 경제적으로나 자녀양육에 도움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싫다면 ‘그냥’ 일 가능성은 적다.
그 동생 중 한 명은 아이 둘을 봐주러 오시는 시어머니가 8시쯤 오셔도 되는데 7시 반부터 오셔서 손주가 왜 이렇게 일찍 오시냐고 물었더니 “내 아들 보고 싶어서”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싫었다고 했다. “야~ 본인 아들 보고 싶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냐.”라고 웃었지만 평소에 얼마나 “내 아들, 내 아들”하셨을지 알만하다. 맞벌이하는 며느리 앞에서(심지어 이들은 같은 직장에 다닌다.) 아들 고생한다고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라하셨을 테지.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 아줌마는 너희 엄마가 아니시다. 너는 그 사람의 자녀가, 혈육이 아니기 때문에 걱정이 안 돼. 애틋하지도 않아. 그저 상황에 따라 “고맙다, 애썼다.” 정도의 인사치레를 하겠지. 그마저도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닐지라도 무슨 남한테 진심씩이나 바랄 일이냐.
정말 가족이 되었다고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관계라면 이 정도로 생각해 두렴.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세대에도 이상하게 시집 식구들의 면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르면서 그저 배우자의 가족이라고 해서 나를 당연히 자녀로 형제로 받아주고 그들과 한 묶음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시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내 안부는 건성 묻거나 아예 스킵하고 남편에 대한 걱정만 한 보따리 늘어놓으면 서운한 것이다.
애초에 그 사람이 전화를 건 목적은 자기 자식에 대한 동태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누려는 것이다.
학부모가 어린이집이나 학교 선생님에게 학부모 상담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 사람에게 나의 안부는 ‘안물안궁’이다. 통화 시작 즈음에 “잘 지냈니?”는 “선생님 잘 지내셨죠?” 정도로 들으면 될 일이다.
학부모가 안부를 묻는다고 거기다 대고 정말 내 근황을 이야기하는 선생님은 없질 않은가? 거기다 대고 여기 아프다 저기 안 좋다 요즘 직장이 힘이 들다 이런 이야기는 위로가 아니라 우려로 돌아온다. 내 아이를 돌보는 선생님이 아프다고 하면 요즘 세상에 누가 선생님 걱정을 하겠나? 그럼 우리 아이 돌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며느리가 아프면 내 자식 주머니에서 병원비가 나가거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부담 될 걱정이 우선이다.
며느리가 아프거나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면 “그럼 니 남편 밥은......” 따위의 말이 돌아오는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왜 자식의 배우자를 보모취급이냐고 항변해 보았자 우리 시어머니 세대는 때려죽여도 이 생각을 고칠 수 없다. 가장 덜 불쾌하게 생각해 본 역할이 학부모와 선생님 정도이다. 이것도 상대가 예의가 있는 경우겠지만.
시집에서 남편만 챙긴다. 나는 가족이 아닌가 보다. 마음 상해하기 전에 내 마음을 잘 갈라서 쓰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다. 내어 줄 것은 배우자의 가족들에 대한 배려, 배우자를 위해 서로의 가족에 대한 예의, 각자 가정에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 정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바탕에 배우자와 나의 관계가 어떠한가 가 가장 중요하다. 흘려보낼 감정은 여기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시집에는 며느리의 타자성을 인정해 주기 바라고 명절에 오래 붙잡지 않고 내 집에 자주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왜 아들과 차별하냐고 마음에 서운함을 쌓는 건 모순이다. 시부모의 타자성도 인정해 주자.
그 아주머니는 나를 낳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전화해서 남편 안부를 묻고 걱정을 해도 적당히 대답 정도는 해주자. 어릴 때 동네에서 친구 엄마를 마주치면 “우리 ㅇㅇ이 학교에서 잘하니? 아줌마가 걱정이다. 네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렴.” 하시질 않았나? 그럼 우리는 또 “네~ 아줌마(때론 넉살 좋은 남학생들은 어머니라고도 했다.)”하면서 대답해 드렸다.
ㅇㅇ이 엄마를 조금은 이해해 주자. “내 아들 보고 싶어서......” 정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