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국민대통합 시리즈_어플에서 만난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 ②
삼겹살 집에서 나와 2차로는 선술집엘 갔어. 마침 그날은 축구 한일전을 하던 날이었는데 가게에는 TV나 스크린이 따로 없더라고. 방음이 안 되는 벽이었는지 옆 가게 손님들이 지르는 환호소리가 들리니까 괜히 더 궁금하고 우리도 챙겨봐야 할 것만 같고 그렇더라? 그래서 손바닥만 한 내 핸드폰을 벽에 세우고 같이 축구경기를 봤는데 문득 이 상황이 좀 웃긴 거야. 생각해 보면 남편도 멀리서 온지라 1박을 할 숙소를 잡았고 나도 돌아가야 할 회사 숙소가 있으니 각자 숙소에 가서 큰 TV로 봐도 되는데 다 큰 성인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이러고 있는 게 웃긴 거지. 그래서 이런 상황이 웃기다 하니 남편이 “그래도 이렇게 같이 보는 게 더 좋지 않아?” 이러더라고. 음, 얘도 나를 마냥 나쁘게 보진 않았나 보다 했어.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각자 숙소로 돌아갔어. 생각해 보면 ‘우리 내일 또 보자, 연락할게’ 이런 말은 서로 안 했던 것 같아. 그냥 재밌었다 하고 돌아갔지. 돌아가면서도 설렌다, 연락을 해볼까? 이런 마음은 안 들었던 것 같아.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를 만나고 헤어진 느낌? 그러고 다음날이 됐는데 정말 내가 얘를 어떻게 해보려고 한 건 아니고 그래도 사람이 멀리서 왔는데 밥은 먹이고 돌려보내야 할 것 같은 거야. 진짜야. 당시 남편은 본가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나를 만나러 편도 1시간 걸리는 거리를 차 타고 온 거였거든.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사람 된 도리로써 왜 찝찝한 거, 그런 거 있잖아. 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을 했어. 혹시 점심 같이 먹을 생각 있냐고. 있다네? 데리러 온대. 흠, 그래…? 뭐… 남자들은 흰 티에 청바지를 좋아한다고?
아니, 이왕 나가는 거 ‘꾸안꾸’ 알지? 꾸민 듯 안 꾸민 그런 느낌. 옷장 다 뒤져서 나름 청순하게 하고 나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도 그날의 나를 청순하게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육회비빔밥으로 적당히 배를 채우고 호수 근처에 카페에 갔는데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서로의 인생 계획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됐어. 아무래도 둘 다 서른을 시작하는 나잇대였고 주변 친구들도 하나둘씩 가정이든, 꿈이든 찾아가는 시기니까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갔던 것 같아. 사실 그 당시에 내가 뭐라고 했는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남편은 그때의 대화가 되게 좋았대. 서로의 방향이 잘 맞는 것 같더래. 내가 그날따라 입담이 좋았나? 아니면 내 청순함을 곁들인 ‘전투복’이 힘을 발휘했던 걸까?
그러고 이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으니 얘를 집으로 보내야겠다 하고 있었는데 호수공원까지 왔으니 호수를 한 바퀴 돌쟤. 그래, 그거 뭐 어렵다고. 그러면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딱 하나. 남편네 회사 후배가 강남여고를 나왔는데 강남여고가 서울이 아닌 순천에 있다, 뭐 그런 얘기. 그러다가 내가 돌부리였는지 땅으로 나온 나무뿌리였는지 어디에 걸려서 넘어지려는 찰나에 얼떨결에 남편이랑 손을 잡게 됐어. 근데 나 진짜 의도한 거 아니었어, 진짜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