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 3] "회사가서 말해. 어제부터 사귄다고."

본격 국민대통합 시리즈_어플에서 만난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 ③

by 감자

얼떨결에 손을 잡고 나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근데 또 이 상황에서 남편 손을 뿌리치게 되면 남편이 상처를 받을 것 같은 거야. 그래서 손을 잡은 채 산책을 계속하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언제 손을 놓지?’ 이 생각만 가득했었어. 나 혼자만의 눈치게임.(웃음) 여담이지만 이 얘기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남편한테 했더니 속았다고 엄청 배신감 느끼더라, 하하.


자, 이제 우리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산책도 했잖아. 집에 가야지? 근데 갑자기 영화를 보쟤. 영화 보는 건 전혀 내 머릿속에는 없던 시나리오였는데… 그래 뭐, 멀리까지 와줬는데 영화쯤이야! 그렇게 영화관에 가서 정소민, 강하늘 주연의 ‘30일’이라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봤어. 영화 재밌군! 자, 이제 집에 가야지! 근데 이번에는 저녁시간 다 됐다고 저녁을 먹자네? 그래,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구나. 저녁도 먹자! 영화관 건물에 식당들도 있더라고. 거기서 담양식 숯불갈비를 먹었어. 자, 이제는 진짜 헤어지겠지? 하면서 우리 회사 숙소까지 왔는데 얘가 얘가 산책을 또 하자는 거야. 끝이 안 나는 데이트 코스에 적잖이 당황스럽긴 했는데 나도 마냥 싫진 않았어. 내가 마음에 드나 보다 했어. 웃긴 건 마지막 코스가 산책이었잖아. 저녁 산책으로만 1시간 30분을 걸었다. 에도 산책을 했으니 과장 조금 보태서 저 날 하루에만 2만보를 걷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월요병이 심해서 일요일 밤에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출근을 하는데 아마 저 날은 숙소 복귀하자마자 바로 잠들었던 것 같다.


기 전에 남편한테 카톡을 보냈어. 오늘 즐거웠다고, 나 먼저 잔다고, 앞으로도 재밌게 놀자고. 아니 뭐, 사귀자고는 안 하고 그냥 재밌었다고만 보냈어.(웃음) 그렇게 남편은 대략 일주일 동안 퇴근만 하면 우리 동네로 와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그러고 다시 돌아가는 걸 반복했어. 아마도 기름값이 꽤 많이 들었을 같아.


주일이 되던 날, 나서 회사 얘기를 하다가 별생각 없이 우리 동료직원이 나보고 아직 안 사귀냐고 놀리더라 하니까 남편이 “내일 출근해서 그 직원한테 말해. 어제부터 사귀기로 했다고.” 이러는 거야. 와… 나 그 자리에서 바로 소리 질렀잖아. 정말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근데 이게 쓰고 보니까 좀 이상하긴 한데 이것도 일부러 고백을 유도했던 건 아니야, 진짜야.


선선한 가을, 일주일 간의 저녁 식사 끝에 우리는 그렇게 사귀게 됐어. 내가 그때 전라도로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외롭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데이팅 어플 광고를 보지 않았더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다른 곳에서 만났으려나? 근데 이거 쓰면서도 되게 두근두근하다. 여전히 많이 사랑하나 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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