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국민대통합 시리즈_어플에서 만난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 ④
안녕, 오랜만이야! 다들 잘 지내고 있지?
오늘은 결혼 준비의 서막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해. 사실 서막이라고 할 것까진 없는데 괜히 있어 보이고 싶어서.(웃음) 알다시피 우리는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둘 다 전라도에 있긴 했지만 같은 지역에 살지는 않았어. 시간으로 따지자면 편도 1시간 정도? 둘 다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평일에도 퇴근 후에 자주 서로를 보러 왔다 갔다 했지만 아무래도 같은 지역이 아니다 보니 사실상 주말커플이었지, 뭐. 그래서 우리는 주말 위주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특히 각자 살아온 지역에 서로가 자주 가보지 못했던 터라 주로 전라도나 경상도로 여행을 가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에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둘 다 의욕이 넘쳐서 1년 간의 여행계획을 짜자! 이렇게 된 거야. 그래서 12월에는 대방어를 먹으러, 1월에는 스키를 타러, 2월에는 영덕 대게를 먹으러, 3월에는 광양 매화축제, 구례 산수유축제, 진해 군항제에, 4월에는 소풍을, 5월에는 울산에 장미를 보러, 6월에는 고창에 복분자를 사러 가기로 했는데 대뜸 남편이 그러더라. “그래서 상견례는 언제 할 건데?”
띠용! 나는 살면서 저런 말을 처음 들어봐서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당황하긴 했는데 여기서 내가 당황한 티 내고 어버버해버리면 남편이 혹시나 민망해할까 봐 나도 자연스럽게 “그러게, 몇 월이 좋을까?” 하고 받아쳤지. 근데 사실 진짜 놀랬다. ‘엇, 이렇게 빨리 진행이 돼도 되는 것인가? 저 사람은 나의 무엇을 보고 결혼을 논하는 것인가?’ 하면서 오만 생각들을 했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남편을 만나면서 느꼈던 좋은 감정들이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나 보다 하면서 안도가 되기도 했어.
그날, 우리끼리 상견례는 대충 몇 월에 하자 하고 결혼 얘기는 잠시 묻어두고 있었는데 얼마 뒤에 꽃다발을 준비해서 온 거야. 꽃다발도 물론 예쁘고 좋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편지가 킥이었어. 본인은 나랑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다 됐다고, 내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전화로 상견례 얘기를 할 때는 사실 웃으면서 얘기를 나눴어서 이 정도로 진지한 줄은 몰랐는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 진실되게 느껴져서 내가 이때까지 받은 편지들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편지였어. 지금은 우리 본가에 있지만 결혼을 하기 직전까지 지갑에 부적처럼 넣어 다녔어. 그래서 많이 너덜너덜해졌지만 가끔 그 조그마한 편지 봉투만 봐도 행복해지고 웃음이 나.
남편의 프러포즈에 대한 답은 당연히 YES!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남편을 떠올려봤을 때 내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더라.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은 사실 한두 개씩 내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있었음에도 흐린 눈으로 애써 외면하고 모르는 척하면서 만났었거든. 근데 지금의 남편은 정말로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하나도 없던 사람이었어.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우리 둘이 함께라면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 남편이 돈을 엄청나게 잘 버는 사업가도 아니고 집안의 도움을 넉넉하게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나 역시 비슷한 처지라 애초에 나보다 더 나은 조건을 바라는 건 과한 욕심 같았고 오로지 사람 됨됨이만 봤어.(사실 외모도 조금 봤어, 아니 사실은 많이.) 근데 절대 후회되진 않고 오히려 난 정말 결혼 잘한 것 같아.
결혼을 준비하면서 주변에서 하나같이 물어보더라. 프러포즈 어떻게 받았냐고, 가방 받았냐고. 비록 꽃길 끝의 샤넬도, 자동차 트렁크 속의 루이비통도 아니었지만 그냥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나를 믿고 미래를 함께하자 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했었어. 아무래도 나 3개월 동안 이미지 관리 잘했나 봐, 후후. 주변에서 3개월이면 너무 짧은 기간 아니냐 우려의 말들도 많았는데 서로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 서로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고 결혼 준비를 시작하게 됐지. 편지를 받은 당시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벅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는데 시간 지나 막상 글로 쓰고 보니 부끄럽다.(웃음) 오늘도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이다음에는 양가에 인사 갔다 온 후기로 돌아올게, 더위 조심하고 모두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