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냉장고 앞에서

닭죽과 포르쉐 그 사이

by 진주아지매

오래된 철문을 밀고 아버지댁에 들어선다.

'누고?'

묻곤 하던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골목에 늘 주차돼 있던 차가 보이지 않았다.

현관에는 아버지 신발이 없고, 거실 불도 꺼져 있다.

외출하셨나 보다, 생각하면서도 아버지가 어디로 가셨을지 짐작이 간다.


뚜르륵 뚜르륵.

신호가 몇 번 울린 뒤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신다.


"집에 왔더니 안 계셔서요."

"아- 내 거기... 니 엄마한테 가는 길이다."


짐작대로다.

아버지는 어머니 계신 납골당에 가고 계셨다.

자식들은 이제 제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듬성듬성 찾게 된 그곳을,

아버지만은 매주 어머니 좋아하시던 생화를 들고 찾으신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아내를 향한 아버지만의 사랑법이다.


돌아오시려면 시간이 꽤 걸리니 가져온 반찬을 넣어 두려 냉장고를 연다.

지난주에 오빠 부부가 다녀갔다 했으니 걱정은 않았다.

한 달에 한번 오는 오빠는 늘 국과 반찬을 채워두고 가니까.


하지만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서늘해진다.

작년에 담근, 쉬어빠진 김치와 마트에서 사 온 된장, 고추장, 새우젓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반찬은 없다.

나조차 챙겨다 드린 지 열흘이 넘었다.


그동안 도대체 뭘 드시고 지낸 걸까...

가스레인지 위 냄비를 열어본다.

먹다 만 닭죽이 바닥에 눌어붙어 있다.

조카가 보냈다던 기성 닭죽을 꺼내 드셨던 모양이다.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안방을 쳐다본다.

어머니 쓰시던 장롱이 커다랗게 벽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저 장롱을 사놓고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예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장롱은 니가 가져가서 쓰면 어떻겠노?"

"아... 네에 그럴게요"

"아이다, 장롱 가져가지 마라."

"왜요?"

"부모가 쓰던 물건을 자식이 쓰면 그 팔자를 그대로 물려받는다카더라. 고마 놔둬라."


평생 고단하셨던 어머니는, 그 팔자만큼은 자식에게 주고 싶지 않으셨던 거다.

장롱은 안방이 비어 버린 지금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머니가 사랑하시던 모습 그대로.

장롱뿐일까.

화장대도, 방석도, 침대도 어머니 계실 때와 같다.


한때는 4형제와 할머니, 어머니까지 북적이던 집에

이제 아버지는 홀로 남아 계신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병원에 가고, 백신도 혼자 맞으시면서도

아버지는 늘 같은 말씀을 하신다.

"나는 괘안타."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투덜대는 사이 아버지의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오빠 부부를 믿을 게 아니라 가장 가까이 사는 내가 챙겼어야 했다.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드린다.


"아버지, 반찬이 없네요."

"아... 이번에는 사과만 좀 사 왔더라."

그리고 덧붙이신다.


"​휘가 포르쉐를 샀다고 하더라."


수억 원을 호가하는 차의 이야기와,

냄비 바닥에 남은 닭죽의 온기가 겹친다.


좀 힘들면 어떤가.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가장 기쁘지 않던가.

한겨울의 추위를 그대로 맞으며

내일부터 아버지 드실 국과 반찬을 준비해야겠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차의 시동 소리보다, 텅 빈 냄비 바닥을 긁는 숟가락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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