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녀에게 건네는 크리스마스

돌솥밥의 온기와 돌고래의 불빛

by 진주아지매

십여 년 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무심히 인터넷 서핑 중이던 제게 한 문구가 가슴을 때렸습니다.


‘우리들의 부모님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립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말이었지요. 아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멋진 레스토랑에 예약하며 분주했던 시간 동안 내 계획 속에 어머니는 단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니는 어머니일 뿐, 크리스마스같은 건 상관이 없다ㅡ라고 치부해 버린 오만함이 그제야 부끄러움으로 밀려왔습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서둘러 어머니께 갔습니다. 외풍이 심한 오래된 집에서 홑옷을 여러 겹 껴입고 계시던 어머니는 두 눈이 동그래지셨죠. 저는 그저 웃으며 같이 점심이라도 먹으러 왔다고 어머니의 손을 이끌었습니다.


맛있고 비싼 것을 사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돌솥밥이 드시고 싶다 하셨어요.

어머니가 자주 가신다는 돌솥밥 집은 조금 허름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그곳에는 어머니만큼이나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여기저기 앉아계셨습니다.

빛바랜 그림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따뜻한 돌솥밥을 앞에 두고 어머니께 여쭈었어요.



"크리스마스를 기다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예?"


어머니는 툭 던지 듯 대답하셨어요.


"하루 세끼 밥 먹기도 벅찼는데, 크리스마스같은 걸 우찌 기대하고 사노?"


그 담담한 대답 뒤에 숨은 웃음을 보며 목이 메었습니다.

어머니는 기다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낡은 양말을 빨아 머리맡에 두며 산타를 기다리던 나의 유년 시절,

내 양말이 비어 있던 이유는 산타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머니 역시 그 빈 양말을 채울 여력이 없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임을 성인이 되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젊었던 어머니는 노인이 되고 오래된 집에서 세월과 함께 낡아가고 계셨는데,

저는 크리스마스를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기며 어머니를 축제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 돌솥밥이 참 맛있구나.

- 네 많이 드세요. 이제는 해마다 제가 크리스마스 점심을 사드릴 게요.

- 어유! 됐다! 늙은 사람이 무슨 크리스마스냐!



손사래까지 치시는 어머니께 저는 아무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다만 마음으로 다짐했습니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어머니 선물을 먼저 챙기겠다고. 가슴 두근거리는 아이처럼 어머니도 그날을 기다리고 즐길 수 있도록 작은 산타가 되겠다고.


자식을 온전한 어른으로 키우시느라 백발 가득한 노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한 때는 어머니도 꽃처럼 아름다운 젊은이셨다는 것을 저만은 기억하겠노라고.


어머니께 드린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은, 근무하던 학교의 학생들이 만든 돌고래 스탠드였습니다.


"아이고 참 예쁘다! 머리맡에 두고 화장실 갈 때 켜기 딱 좋겠네!"


스탠드는 딱 하루 어머니의 머리맡을 밝혔지요.


"담즙 주머니만 갈고 올게. 하룻밤만 입원하면 돼!"라고 하셨던 그 약속이 영원한 이별이 된 지금,


크리스마스엔 홀로 계신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그렇나? 난 뭐 크리스마슨 줄도 몰랐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반응에 선물할 곳을 찾아 팔딱거리던 환희는 갈 곳을 잃고 주춤거립니다. 기뻐해 줄 주인공이 사라진 축제는 시리고 쓸쓸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돌솥밥의 온기를 기억합니다. 짧았지만 어머니의 머리맡을 지켰던 돌고래 스탠드의 불빛처럼,

제 마음속엔 여전히 '기다림을 선물 받고 싶어 했던' 한 소녀같은 어머니가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해마다 그 소녀에게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건넵니다.

비록 대답은 들을 수 없어도,

마음속 돌고래는 여전히 푸른빛으로 그 소녀의 머리맡을 밝히고 있습니다.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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