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걷는 카페

대리석 바닥 아래 숨겨진 열여섯 오빠의 밀가루전

by 진주아지매


비 내리던 지난 주말

교육청 근처에 멋진 카페가 있다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왠지 모를 익숙함에 자꾸만 두리번거리다 나는 깨달았다.

유리문을 열면 와르르 소리가 나고,

내리는 비가 하염없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그 카페는

바로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이었다!


*

아홉 살이었을 것이다.

잦은 이사를 다니다 세 번째 정착한 동네는

꼬불꼬불 골목이 사방으로 뻗어 숨바꼭질 명당인 데다,

길고 긴 골목 끄트머리에 있어 더 좋던 바로 그 집.

멋들어지게 리모델링한 안채에서

힙한 차림새의 주인장이 커피를 내리고 있지만

유리 너머 정원 풍경이 참 익숙한 그 카페는,


옛날 동네

우리집이었다.


*

며칠이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 대신 어무이는 아침마다 이웃 동네에 고구맛단을 매러 가서 밤에야 돌아왔다.


한창 먹고 싶은 게 많은 열여섯 살 중학생이던 오빠는 학교에 다녀오면 연탄 아궁이에 앉아 밀가루를 두껍게 반죽해 구워 먹었다. 식용유도 없이 시커먼 솥뚜껑에 올린 반죽 밀가루가 익으면서 고소한 냄새가 퍼지면 언니와 나는 넓적하게 등을 보이고 앉은 오빠 뒤에 모여들었다.


모르는 척 돌아앉아 익은 밀가루 전을 뜯어먹는 오빠는 혼자만 먹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오빠아~ 그거 맛있겠다."

"음."

"오빠아~ 나도 먹고 싶다. 좀만 주면 안 돼?"

"그럼 조금만이다?"


그러며 오빠가 떼어주는 밀가루 전은 손가락만큼 작았지만 손바닥만큼 두꺼웠다.


"오빠야, 나는 안 주나?"


네 살 위 언니가 끼어들자 오빠는 한숨을 푹 쉬면서 또 그만큼의 밀가루 전을 떼어내주면서 그랬다.


"이것만 먹어야 돼!"

"응!"


우리 형제의 유일한 간식이던 그 전은 속이 익지 않아 밀가루 냄새가 났지만 기차게 맛있었다.


*

어둠이 깔리자 어머니가 돌아왔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어무이가 들고 온 고구맛단을 풀어 연탄 아궁이에 쭈그리고 앉아 볶기 시작하면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팠다.


기다림 끝에 차려진 밥상.

진미 간장 한 종지에 고구마줄기 볶음이 다였지만

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먹어보지 못한 우리에게 그건 산해진미나 마찬가지였다.


"어무이! 참 맛있어예!

"글나? 마이 묵어라."

"어무이는 안 묵어예?

"내는 배가 부르다."


햇빛에 그을려 새카매진 얼굴에 눈만 반짝반짝 빛나던 어무이.

나는 알았다. 어무이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맛있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어무이는 그랬으니까.


"내 그거 안 좋아한다. 너거들 묵어라."


그래서 나는 밥상 앞에선 꼭 어무이에게 숟갈을 쥐어주곤 했다.

"같이 묵자고요, 어무이. 어서예."

*

옷 갈아입은 세월이 자리를 지키면 이럴까?

개구쟁이 4남매가 자라느라 온통 칼자국 투성이던 장판 대신,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이 은은한 빛을 내고

여섯 식구가 둘러앉아 수제비를 먹던 나무 밥상 대신,

색과 결을 투명하게 살린 나무 탁자에 진동벨이 올려진다.


어무이도 동생도

이제는 세상에 없는데

아홉 살 적 우리가 살던 옛집은

세월의 옷을 갈아입고

천연덕스럽게 커피 향을 풍기고 있다.

문득 마음이 갈 곳을 잃는다.


*

눈물이 차오르던 그때

창밖에 탁 시선이 박힌다.


교회다!


길던 골목도, 우리 집 담도 사라졌지만

동네에서 가장 크던 그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먹을 것 없던 시절,

빵 하나 얻어먹겠다고

안 다니던 교회를 한 달 전부터 출석해 가며 정성을 보이면

어김없이 크리스마스엔 빵이 한 아름 주어지던 곳.


“야! 내가 먼저 왔어!”

“뒤에 온 사람 새치기하지 마!“


혹시라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까

전전긍긍에 아우성이어도

우르르 모여선 줄에선 석류알같은 웃음이 자꾸만 터지고

이번에는 어떤 빵을 줄까,

때 묻고 코 묻은 얼굴에 설렘 가득하던

내 어린 날의 동지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추억에 젖은 내 마음 위로 햇살이 한 무더기 내려앉는다.


*

눈을 질끈 감으면


밥 무라~ 부르던 울 어무이 다정한 목소리와

연탄 아궁이에 구부려 두꺼운 밀가루 전을 부쳐주던 오빠의 등과

무서워 혼자 가지 못하던 화장실에 따라와 장화홍련전을 들려주던 언니의 미소와

동네 아이들과 놀다 싸우고 나면 '작은누나야' 부르며 달려오던 꼬맹이 내 동생 모습이


기억을 걸어

한달음에 달려온다.